민병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

퇴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측근인사들에 대한 사면을 단행한 것에 대해 세간에서 말들이 많다. 청와대에서는 친인척과 대통령 재임 중 발생한 비리와 관련된 인사를 배제하였고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절한 사면이라는 논평을 하였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약 100여 차례 상당의 사면, 감형, 복권 조치가 있었는데, 과거 군사정권 시대의 사면은 주로 정치적 고려에서 엄혹하고 무자비한 형벌권 남용에 따른 후속조치로서 이루어졌다. 이는 국민화합을 천명하기는 하였으나 권력자들이 만든 악법과 잘못된 법적용에 따른 국민적 폐해를 은폐하기 위한 최고 권력자의 '쇼'에 불과하였다.

그 후 5공화국과 6공화국에 들어서서 수십 차례의 사면이 있었다. 신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처벌을 하였고 그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규모 사면으로 이어졌다. 특히 과거 정권에서의 '악'을 제거하여 정의를 세운다는 '과거청산'을 기치로 새로운 권력자들은 권력형 비리자, 부정 경제인 등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을 벌여 국민의 지지를 끌어올렸고, 그 후 어느 정도 권력 기반이 다져진 후에는 국민 대통합의 명목 아래 부패사범을 풀어주는 식으로 사면권을 정치적 기반 형성을 위한 도구로 남용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여러 사면을 보면 우리나라에 있어서 사면은 헌법과 사면법이 정하는 법적인 고려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권력적 고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법치주의의 형해화와 사법부의 권위 약화를 초래하였고 또한 권력층이 아닌 일반 형사범죄자에게 있어서는 형평성의 불만과 법의 정당성 훼손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 헌법과 사면법이 정하는 본래 의미의 사면이 행해질 수 있도록 과거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제한을 두어 사면권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런 와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많은 사면을 단행한 것이다.

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정하여 형의 선고 효력이 상실되거나 공소권이 소멸되는 일반사면과 특정 범죄인에 대한 형의 집행을 면제하는 특별사면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사면권의 행사는 사법부의 판단을 변경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에서 정하는 3권 분립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될 소지가 있고, 법치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형평성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

사면권이 우리 헌법에서 인정하는 대통령의 권한이고 그 사면권 행사에 대해 헌법의 하위법인 사면법이 대략적으로 규율하고 있으나, 우리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좀 더 근원적인 권력분립의 원리, 법치주의의 원리와 같은 상위의 법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 구조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하위규범적인 사면권은 상위규범인 권력분립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사면권 행사의 헌법내재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선적으로 사면권은 사법권이나 입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3권 분립상의 한계로 존재해야 한다. 법원의 사법작용이나 국회의 입법활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까지 사면권의 행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항소심이나 상고심의 재판이 남아 있어서 당해 피고인에 대해 법원의 사법작용을 통해 충분히 구제될 여지가 있음에도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다면 권력분립의 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최근의 사면 대상자 중 1심 형사판결 후 항소를 하지 않아 형을 확정시킴으로써 억지로 사면의 대상이 된 사례는 사면권의 헌법내재적 한계를 위반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면권이 과거 제왕적 군왕의 은사권에서 유래되었고 은사권의 한계는 거의 전적으로 군왕에게 위임되었지만, 현대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그와 같은 은사권의 행사는 철저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그에 따라 범죄에 대한 법적 평가가 현저히 달라졌다거나, 과거의 정당성 없는 법적용에 대한 반성적 고려와 사회계층 간의 갈등의 지양과 사회통합을 위한 고차원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사면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헌법적 권한으로 위와 같은 한계에서 벗어난 사면권을 행사한다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법적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감안한다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법치주의를 세운다는 기치 아래 사면법의 전면 개정을 통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중요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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