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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참된 스승 가르침

2013-02-06기사 편집 2013-02-05 21: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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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목원대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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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연구에 시간을 토해내지 못하고 있다. 전국의 미술대학들은 입시생 유치와 미술 실기고사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1월 한 달여간을 각각 지정해놓은 미술대학에서는 계열별 가·나·다 군에 따라 좋은 학생들을 대학별, 전공별로 유치하기 위해 한창 촉각을 세우는 시기다. 필자도 긴장과 불안의 끈을 며칠 전까지 놓을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필자의 자녀가 한국화 전공으로 미술대학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합격 소식을 들어 지금은 마음의 긴장과 불안이 사라진 상태다. 열심히 노력해 당당히 합격해준 딸아이가 고맙기만 하다.

딸아이의 합격 이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사명과도 같은 일은 운산(雲山) 조평휘 은사님을 찾아뵙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줄기를 이어나갈 화업의 길에서 근원의 샘을 찾아가는 의무이고 사명감일 것이다. 조평휘 선생은 그러한 분이시다. 필자뿐 아니라 본교 미술대학의 한국화를 초석으로 다지시고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 한국화의 모색으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중심에는 조평휘 선생의 동양회화 정신의 고결한 품성과 철학사상이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딸아이를 데리고 은사님을 찾아 뵈러 가는 동안 지나간 수많은 세월 속에서 잠시 잊혀졌던 은사님과의 추억 속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은사님과 동문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생 스케치 여행을 한 일이며, 조교 시절 출근길에 좋은 신문 사설을 오려다가 조교들에게 돌려 보라고 권고하셨던 일, 늘 말씀하시듯이 화가는 그림만 잘 그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 속에 책을 항상 손에서 놓지 말라 말씀하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새롭게 스크랩됐다.

대전시 중구 중촌동에 있는 은사님의 화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아틀리에처럼 폼나게 꾸며져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화실에 들어설 때면 생생한 묵향은 쉼 없이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고, 겹겹이 책장의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다양한 서적들이 엎어져 쌓여만 가고, 그 안에서 무언가에 열중하시는 소담하고 정갈하신 선생의 모습은 편안함을 안겨준다. 선생은 본교에서 평생 후학을 지도하시면서 작품 활동에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하시곤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퇴임 이후에는 이 화실에서 치열하게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계신다.

오늘도 그러하셨다. 딸아이를 단정시키고 노크를 하였지만 대답이 없다. 살짝 문을 열고, 큰 소리로 "교수님 종필이가 왔습니다" 하지만 묵묵부답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선생은 작품 자료들을 한참이나 정리하고 계셨다. 그 순간 화판 가득 채워진 광대한 대작이 완성 단계에 이르러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편으론 팔순(八旬)을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굳건하고 강건한 기운으로 대작을 과감하게 펼쳐내시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들며 마음이 기쁘기만 하다. 학장님으로 재직하실 당시에 "인생의 많은 직업 중에 화가가 최고야! 그림 그리는 화가는 정년이 없어!" 하셨던 말씀대로 평생을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장자(莊子)에서 이르듯 소요유(逍遙遊) 사해유룡(四海遊龍)하듯 그렇게 즐겁게 거니시는 것이리라. 필자는 대학 입학에서 대학원과 조교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은사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진정한 화가로서의 길을 다각도로 배울 수 있었다. 제자에 대한 참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주셨으며 항상 눈과 귀를 활짝 열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배움의 자세를 놓지 않았던 은사님. 이제 미술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설 내 딸아이가 선생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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