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1942~)

진실로 나는

저 새끼 꼬는 사람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니체

일이 꼬일 때마다

새끼 꼬는 사람을 생각한다

길게 꼬이지 않고 싶다는 생각

자꾸만 뒤로 물러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일이 풀릴 때마다

새끼 꼬는 사람을 생각한다

길게 꼬인 새끼를 풀고 싶다는 생각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

생각 끝에

구불구불 끌려나오는 내 속의 새끼들

누가 새끼를 길게 꼬아 나가면서

뒤로 물러나고 싶으랴

진실로 나도

저 새끼 꼬는 사람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TV 화면 속 혼자 살아간다는 할아버지는 촉수 낮은 백열등 아래 묵묵히 새끼를 꼬고 있다. 병들어 걷지도 못한다는 할머니에, 며칠째 자리에 누워 있다는 헛간의 황소에, 사업이 잘못돼 땅을 팔아 갔다는 큰 자식까지 걱정거리들을 조금이라도 잊어보려고 새끼를 꼬기 시작했단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흔들리는 그림자, 길게 꼬인 새끼줄이 밀려나 그 위에 둥글게 똬리를 틀고 앉는다. 새끼줄과 함께 잘못 꼬여버린 할아버지의 세월이 쌓여 가는 그 풍경은 너무나 무겁다.

'길게 꼬인' 생각의 '새끼를 풀'려고 안간힘을 쓸 때마다 더욱 깊은 생각의 수렁에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새끼줄처럼 이어지는 생각들과 싸우다 보면 '앞'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어진다. 생각이란 과거의 어떤 지점에서 촉발하는 것, 결국 과거 때문에 미래를 저당 잡히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 빠져 사는 삶에는 결코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쌓여 있는 근심들을 끊어버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통해서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부정은 자칫 현재의 자신까지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온갖 실패와 상처를 통해서 만들어진 '내 속의 새끼들'에게 진심을 담아 손을 내밀어보자. 내 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다독일 줄 아는 자만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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