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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청론] 내포는 포구다

2013-02-05기사 편집 2013-02-04 21: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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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민 충남역사박물관장

내포문화권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내포신도시로 충남도청이 옮기면서 내포(內浦)라는 지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일반의 인식은, 내포가 그저 순우리말로 '안개'를 뜻하며, 바닷물이 육지 안으로 들어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는 수준에 머문다. 사실 내포라는 말은 평범한 보통명사에 불과하다. 마치 '안터'를 '내기(內基)'라고 표기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전국에 내포라는 지명은 드물지 않고, 대부분 예전에 배가 닿았던 곳이다. 그런데 사료에는 현재 충청남도 서해안에 접한 고장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내포라는 한 옛 포구가 그 일대 지역을 통칭할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포는 어디일까? 내포는 삽교천변에 위치한 배가 닿았던 포구다. 꼬집어 말하면, 내포는 현재 아산시 선장면 돈포리와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 일원으로, 삽교천과 무한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삽교천변에 대한 치수공사로 인하여, 그 일대의 지형이 크게 변하여, 지금은 옛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포가 위치했던 돈곶(頓串)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돈포리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내포와 관련하여 필자가 확인한 최초의 기록은 태종실록의 기사다. 조선 초기 충청도에서의 조운선 운영을 검토하던 조정에서는 1412년 삽교천변의 내포와 남한강변의 금천을 조창으로 택하였다. 대체로 현재의 충청북도에서는 금천으로, 충청남도에서는 내포로 세곡을 운반하도록 하였다. 내포라는 포구가 조정에 바치는 물산이 집결하는 운송 거점이 된 것이다. 내포는 기록에 따라서 돈곶포(頓串浦), 유궁포(由宮浦) 또는 융진(戎津)이라고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원래의 지명은 정포도(井浦渡)였던 듯하다. 이후 택리지에는 가야산 주변 10고을을 내포라 하였다고 했고, 한진나루 남쪽 또는 삽교천 서쪽이라 한 기록도 있다.

그런데 막상 조운선이 정박했던 포구는 곧바로 하류의 범근내포로 옮겼다가, 1478년에는 아산 공세리로 이전하였다. 삽교천 상류에 퇴적이 진행되면서 조운선이 왕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포의 상업활동은 활발했다. 김정호는 내포는 물살이 급하여 밀물 때를 기다려 선박이 왕래하지만, 주변 100여 리 벌판에 주민들이 둑을 막아 개간한 까닭에 상선들이 몰려드는 곳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고지도에는 아산에 속했던 우평면(牛坪面)과 면천의 강문포(江門浦)가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 당진시의 소위 '소들강문'의 평야를 가리킨다. 주민들도 합덕이 주변 평야에서 생산한 미곡이 집산하던 곳이며, 구양도까지 바닷배가 왕래하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흔히 내포지방이라 하면 북쪽으로 아산만에 면하고, 서쪽으로 서해에 접한 곳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삽교천 방조제가 축조되기 전에는 삽교천의 내포까지도 바다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장인 셈이다.

이렇게 바다로 둘러싸이다시피 했던 내포지방에서 1980년경까지도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육로로 크게 우회하여 신례원을 경유하거나, 아니면 한진나루에서 배로 아산만을 건너야 했다. 조선 후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대동지지에는 예산 신례원이 내포의 11개 고을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라 하였다. 이 전통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내포지방에서 신례원을 경유하는 시외버스가 많다. 한진나루를 건너 발안과 수원을 경유하는 길에 대한 추억도 많이 남아 있다. 이런 곳에는 얽힌 이야기도 많은 법이다. 한진나루를 건너는 곳에는 뱃사람들이 제사를 지냈던 영웅바위가 있다. 한진나루로 향하는 길목의 기지시가 번성하고 줄다리기가 대규모로 행해졌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내포문화권 개발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지만, 막상 내포의 유래에 얽힌 기초적인 조사조차 본격적으로 진행된 바가 없다. 지명 유래 외에도, 내포에는 연구를 기다리는 특징적인 주제들이 많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부상들이 고을 단위로 조직되었지만, 내포에서는 여러 고을이 연합하여 하나로 묶였었다. 전문가들이 특히 내포 보부상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백제불교의 상징이라 해도 무방한 내포 불교의 역사, 천주교 전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내포교회의 전통 또한 가공되지 못한 원석들이다.

간혹 기초조사를 언급하면, 모든 주제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새로운 대상에 대한 조사가 쉽지 않고, 결국 기존의 조사결과를 재정리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에서 언급한 내포를 특징 짓는 주제들은 시군지 발간작업을 한다고 드러날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니다. 마치 송골매가 먹잇감을 탐색하듯이, 특정 주제를 목표로 삼아 꾸준하게 천착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대상들이다. 이제 내포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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