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조선 프린스 이준호 지음·역사의 아침·272쪽·1만3000원
입헌군주제를 정치체제로 삼는 국가의 왕실, 그중에서도 왕이 가지는 의미는 - 비록 상징적인 권력이라 할지라도 - 한 나라의 정치·문화를 아우르는 살아있는 역사적 유산에 가깝다. 대중들은 훗날 왕위에 오를 '왕자'와 왕실 일원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화려한 삶을 동경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운명이 지닌 무게는 간과한 채, 화려한 이미지에 갇힌 그들의 겉모습에만 열광한다. 고고학연구자인 저자는 '비운'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조선의 역사 속에서 잊혀져간 왕자의 실제 삶과 그들의 희생이 가져다 준 조선의 정치적 이익을 심도있게 살펴본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폐위된 조선 적장자들의 이야기는 정사는 물론이고 야사에서도 기록이 한정되어 있어 그들의 행적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왕자들의 기록이 담긴 사료의 행간을 읽으려 노력했다. 더불어 저자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고려·조선·명 왕조의 태자 책봉제도에 대한 비교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조선시대는 적서차별, 적장자 계승원칙에 따라 왕권이 세습되는 시대였지만, 이는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구축했던 조선 특유의 후계자 선정방식이었다. 후계자를 미리 정함으로써 정국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은 왕자에게 온갖 유혹과 아첨, 청탁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왕세자들은 또한 절대 권력인 아버지와 적장자가 되지 못한 형제들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또 정치적 이해관계의 희생양이 된 폐위된 왕세자들은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채 불운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책은 태종 이방원에게서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궁 밖으로 내쫓긴 정종의 아들 불노, 정종에게 아들임을 부인당한 지운, 주변의 기대와 감시에 지쳐 타락의 길로 접어든 양녕대군, 성종과 운명이 뒤바뀐 월산대군과 잘산대군 그리고 광해군이 왕세자로 책봉되어 있는 상황에서 태어난 '적장자' 영창대군, 아버지의 견제로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 일곱 왕자의 베일에 가려진 비극적인 삶을 정리했다.
권력을 향한 인간들의 사투는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비정한 권력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스러져간 왕자들의 이야기가 비단 왕조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 다수의 민주적인 선택을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성지현 기자 tweetyandy@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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