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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패자부활전 가능한 감동 교육 만들자

2013-01-31기사 편집 2013-01-30 21: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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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주 목원대 영어교육과 교수 EBS 자문위원

영어격차 해소 방안의 두 번째 이야기는 지금부터 30년 전 충남 보령의 한 중학교로 돌아간다. 지금은 정년을 앞둔 한 노교수님이 20대에 첫 발령을 받아 간 보령중학교 2학년 영어시간.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여러분 '연필'이 영어로 뭐예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그 답을 몰라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한 학생이 콘사이스 사전을 뒤져 "피(P) 이(E) 엔(N) 시(C) 아이(I) 엘(L)입니다"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을 하면서 첫 영어시간을 겨우 마쳤다고 한다. 사전에 나와 있는 발음기호도 읽을 줄 모르고, 영어 원어민의 "펜슬"이라는 멋진 발음도 들어보지 못해서 더듬더듬 영어 알파벳을 겨우 읽었던 중학교 2학년 영어수업.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반 모든 학생이 비슷한 수준이었으므로 학생들 간에 기가 죽을 것도, 우쭐해할 것도 없었다는 점은 위안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중학교 2학년 영어 교과서 진도를 나가기에는 턱도 없는 영어 부진 상태임은 그 당시에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사범대학을 금방 졸업한 혈기왕성한 새내기 영어교사는 중학교 2학년 진도를 나가는 대신, 3월 한 달 동안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복습 후 2학년 진도를 나갔고, 중 1 때 보령군에서 꼴찌였던 해당 학급은 새 영어선생님과 중 1 과정 보정 후 2학년 진도를 나가자 그해 9월에 있었던 도 학력평가에서 보령군 전체 1위로 올라섰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그 초임교사가 학생들의 부족한 실력 만회의 기회를 주지 않고 곧장 2학년 진도를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 그럼 2013년 오늘날의 영어교실로 돌아와 보자. 1970-80년대보다 전반적인 영어 실력과 학습 환경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더 힘들어진 것은 바로 '격차'다.

중학교까지는 영어와 담을 쌓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대학 진학 길을 막고 선 영어를 해 보려 해도 고등학교 교과서 자체를 소화해 낼 수 없는 학생들.

학창시절에는 영어를 잘 피해 왔지만 취업과 승진, 전공 공부에서 영어로 인해 인생의 발목을 잡힌 성인들. 이들에게도 다시 한 번 영어의 리그에서 뛸 수 있는 '패자 부활전'이 필요하다.

교육은 이제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Teaching)에서 학습자들이 배워나가는 것(Learning)의 단계를 넘어서서 학생들 개개인의 필요와 수준에 배움을 맞추어 주는 감동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학교 수업에서 아무도 소외됨이 없이 '학교 때문에 꽉 막힌 인생에서, 학교로 인해 확 트인 인생'으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국·영·수가 대부분인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한 번 공부의 낙오자가 되면 초등학교 6년과 중·고등학교 6년을 포함해 12년을 캄캄한 터널 같은 곳에서 '학습부진아'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는 다른 곳으로 분출되어 게임 중독이나 폭력 등 다양한 학교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 부진아 구제를 위해 다행히 각급 학교에서는 부진아 반을 운영하여 뒤처진 학업을 따라잡을 기회를 주고자 한다.

하지만 학교업무로도 너무 바쁜 교사들에게 부진아 지도의 또 다른 업무를 짐 지워 줄 때, 많은 인내심과 소수정예 개별학습으로 진행되야 할 부진아 반 운영의 성공은 보장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지역대학의 졸업생들이 인근 초·중·고등학교의 방과후수업 강사로 투입되는 형태의 '대학주도형 방과후학교 예비사회적기업'을 선정·지원하는 제도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학습부진'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문제인 '취업부진'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목원대학교도 이 교육과학기술부의 '방과후학교 예비사회적기업'에 선정되어 '목원스마트스쿨'을 설립하여 대전시 초·중·고등학교의 방과후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이 서로 협력하여 학력격차의 절망을 느끼는 이들 학생들에게는 형과 누나 같은 친근감을 주는 예비교사들에게서 고마운 배움을 얻고, 취업의 리그를 준비하는 대학 졸업생들에게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하는 상생의 '감동교육'이 될 것이다.

교·강사와 졸업생, 혹은 대학생을 활용해서라도 영어격차나 교육격차를 줄이는 것은 21세기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임을 잊지 말고 한 번 낙오하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사회 구조가 아닌 인생의 마디마다 '패자부활전'의 리그가 마련된 행복한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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