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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저무는 해, 떠오르는 해

2013-01-30기사 편집 2013-01-29 20: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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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조 금강대 총장

" 삶 있으면 죽음도 있기 마련 앞만 보며 질주하는 삶으론 진정한 즐거움 깨닫지 못해 주어진 시간 소중히 여겨야 "



"시간은 영겁을 흐르는 수레이다. 일곱 필의 말이 이끄는 '시간'이라는 수레의 바퀴살도 일곱이다."

옛날 인도의 현인들이 불렀던 카알라(Kala) 찬가의 한 구절이다. 카알라라는 인도말의 뜻은 시간이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두 번 반복되는 것도 이채롭다. 7이라는 숫자는 자연과 인간의 구성에 있어서 기본적 단위이다.

동양의 오행(五行)도 7을 기본 단위로 하고, 서양의 음계(音階)도 일곱이다. 불교에서는 이 7에 7을 곱한 49가 모든 생명의 윤회결정기간이라고 믿는다. 티베트의 '사자(死者)의 책'이라는 글 속에서는 이 7주 동안의 윤회과정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승을 떠나는 순간에서부터 다음 생애의 결정과정 단계를 담담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천도의례를 49재라고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가는 묘약이다. 증오도 원한도 사랑도 기쁨도 시간의 무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유적지를 찾을 때마다 이 시간의 흐름을 절감한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 조각, 그림을 만든 이들의 지극한 마음과 사연을 알지 못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격언은 짤막한 인생과 영원한 예술품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달리 보면 위대한 예술품을 완성하기에 삶은 너무 짧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제국의 잔영(殘影)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콜로세움의 웅장한 자태 안에서 벌어졌을 상황들을 상상해 본다. 델포이의 신전, 만리장성, 타지마할의 위용 등에서 옛 영광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아마도 이 위대한 예술품들은 묵묵히 세상을 굽어보았으리라. 흐르는 세월의 무게 또한 모든 생명들의 생로병사를 지긋이 지켜보아 왔을 것이다. 시간은 말없이 영겁을 흐르는데, 인간들은 자꾸 그 흐름 사이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그래서 새해라고 말하고, 혹은 가는 해라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허공에 점 하나 찍는 일일 따름이다.

지난 한 해는 대선이 있었고, 번거로운 일들이 끊이지 않았고, 또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권력의 부침 속에 뜨는 해가 있는가 하면 쓸쓸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싸이의 등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고 즐겁게 해주었다. 나는 한류(韓流)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기억 못하고, 그들 몸짓과 노래도 이해 못한다.

이렇게 우리는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 불귀의 객(客)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는 까닭은 무상을 되씹기 위해서가 아니다. 흘러가기 때문에 허무한 것이 아니라 흐르는 세월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왜냐하면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과 공간은 우리들 인생에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는 이는 허무에 빠져들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시공(時空)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나는 후회되는 일이 꼭 한 가지 있다. 내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고 3 때는 이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벗어날 궁리만 했다. 하라는 공부 대신에 대학 가서 놀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군대에서는 제대 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 생활만 벗어나면 모든 행복이 내 차지일 듯싶었다. 교수가 된 후로는 강의하고 논문 쓰는 일이 귀찮았다. 총장이 되면서부터는 도장 찍고, 회의 참석하는 일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뿐이다. 즉 우리는 한 번만이라도 내 인생의 순간들을 즐겨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과정'이었고, 끊임없이 앞만 보고 질주해 왔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속상하고 괴로웠던 일들이었지만, 이제 와서 보면 하찮은 일이었다. 너무나 소중했던 추억들도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망각 속으로 묻혀가고 있다.

백 년 후의 대전 시내를 연상해 본 적이 있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생명들 중 귀신 아닌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기고, 걸음걸이 말투도 비슷한 이들이, 오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시간'을 아끼고 두려워하며, 촌음을 아끼는 마음들이 늘어나야 한다. 실존철학에서는 인생을 '죽음의 연습'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뛰고 있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살아 있는 신호로 해석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그 죽음을 단절과 허무, 고통의 심연으로 보기보다는 삶의 연장선으로 이해하자는 의미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인데도, 우리는 애써 이 진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그러나 '저무는 해'를 음미하는 것은 인생의 큰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시류를 타고 웰빙이 대세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웰다잉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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