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휘(1963~)

밤에 편지를 쓰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겉봉에서 낡아갔다

회귀선 아래로 내려간 태양처럼

따뜻한 상징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내 거친 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눈싸움을 하며 추억을 노래했으나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설차가 지나온 길은 다시 눈에 덮이고

눈 먹은 신호등만 불길하게 깜박거렸다

바람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였으므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였다 모두들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수상한 암호 만

지 듯

동전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어두운 창고에서 첫사랑을 생각해야 했다

언 손을 불며 자전거 바퀴를 고치다가

씀바귀며 여뀌며 쑥부쟁이를 몰래 생각하

였다

눈이 참 많은 겨울이다.

창밖으로 내리는 밤눈을 감상하다가,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내가 너무 현실감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창문을 닫고 대신 내일 아침 찾아올 매서운 추위와 바짝 얼어붙은 길들을 떠올린다. 딸기가 익어가고 있을 누님의 비닐하우스가, 얼어 터진 적 있는 후배 시인의 수도 계량기가, 빙판길만 만나면 미끄러지는 나의 발목이 걱정이다. 온갖 걱정들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현실감 있는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다.

세월이 쌓여감에 따라 눈의 의미는 우리들에게 있어 더욱 '거친' 것이 되고 만다. 눈의 '따뜻한 상징'은 '러브스토리'나 '러브레터'와 같은 영화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현실 속의 눈은 그저 위험한 것, 불편한 것 혹은 스키장이나 눈꽃축제에서 즐길 수 있는 것 정도로 바뀌어 있다. 지금의 시대에 눈 속에서 사랑과 추억이라는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현실의 눈을 피해 마음속 '어두운 창고' 같은 곳에 숨어 '첫사랑을 생각하'듯 몰래 따뜻한 눈을 그려본다.

눈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그 상징성을 잃어간다. 현실의 과제에 급급한 사람들은 더 이상 '씀바귀며 여뀌며 쑥부쟁이'처럼 여리고 약한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에게 받았던 위로도 잊은 채 각박해져 간다.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들은 어느 추운 골목에서 '낡아가'고 있을까?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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