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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의 세상보기] 김지하인가, 김영일인가

2013-01-25기사 편집 2013-01-24 20: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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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문학평론가·충남예총회장

시는 언어미학의 정수다. 그래서 언어를 미학적으로 다루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가장 영예로운 호칭이 시인이다. 시인에게는 언어적 절제뿐 아니라 정신적 절제까지 요구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시인은 고결한 정신성을 생명으로 하는 선비의 다른 이름으로도 자주 통용된다. 자연스런 귀결로 시는 다시 시인의 삶과 동일시될 때가 많다. 터무니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시인이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전통 때문일 것이다.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는 시인을 가리켜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빗대었다. 시인은 일종의 산소측정계로서 시대의 기류를 읽는 선각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게오르규의 말이 아니라도 시인에게는 예술가의 역할과 함께 지성의 영역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있어 왔다.

시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가장 먼저 경보를 울리는 존재로서의 역할 기대인 것이다. 그런 기대 속에 김영일이 태어났다. 스물세 살 때인 63년에 고향 목포의 지역문학지에 김지하라는 이름의 시인 출생신고를 마친 그는 70년에 '오적(五賊)'이란 시를 발표한다. 이로써 그는 스스로 역사의 격랑에 몸을 맡긴 채 시대의 암흑에 맞선 저항의 아이콘으로 각인되는 출발점을 삼는다.

'오적'은 구한말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선 다섯 매국노에 빗댄 반민족 부패세력을 풍자한 시다. 시인은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의 불의를 쩌렁쩌렁하게 일갈하며 부패의 시대에 결연하게 맞선다. 한 시인의 매서운 미적 저항이었다. 이후 체포와 구금, 재판과 석방을 반복하다 민청학련 사건을 정점으로 시인은 마침내 사형을 선고 받는다. 세계적 문인단체인 국제 펜클럽이 시인의 구명 운동에 나서고 종교계와 인권운동 단체가 가세하여 김지하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렇게 70년대를 가로지른 험난한 역정으로 그는 민주화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다. 민주화 진영에서는 그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둥켜안고 김민기의 노래 '아침이슬'을 목 터지도록 불렀다.

김지하의 70년대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인들에게 지적 영감의 근원이다. 김지하라는 이름이 몰고 오는 문학적 환기력도 각별하게 취급된다. 세간에는 김지하의 '오적'이 시대적 모순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는가를 의심하는 시선이 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폴 엘뤼아르가 쓴 '자유'의 창조적 변용이라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혐의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나 역시 김지하는 그 그릇의 크기에 비해 용량이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김지하에 대한 대중의 역할기대가 어느 정도는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 초반의 지식인이 맞닥뜨린 울분과 격정을 시적 언어로 해석해 놓은 그의 공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70년대의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거기까지가 시인 김지하에 대한 신뢰의 발화점이자 임계치이다.

지난 대선에서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진보진영의 지식인과 한 대선후보를 폄훼하는 칼럼을 썼다. 대선 후에는 야당 후보를 지지한 48%의 유권자를 매도하는 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했다. 김지하 시인의 이 같은 일련의 행보에 대해 당연히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체로 모질고 날카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김지하의 전향이라고도 부르고 일흔두 살의 '노추(老醜)'라고도 조롱했다.

김지하 시인을 진보진영의 동지로 생각하거나 70년대의 민주화 행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한 유권자로서의 선택을 억압하는 측면이 강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유권자는 누구든지 강박이 없는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비판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70년대의 프레임만으로 김지하를 판단하는 비판자들이 반성해야 옳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시인 김지하를 자연인 김영일로 돌려 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인의 권위는 문학적 성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그가 더 이상 시다운 시를 쓰지 못하고 있을 때 김지하라는 필명은 의미가 없어진다. 시뿐 아니라 여기저기 신문에 쓰는 칼럼도 논리와 맥락이 없다. 그의 발언들은 거칠고 황폐한 막말 수준이고 뜬금없는 빨갱이 타령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하는 시인은 그의 요즘 글과 말 어디에도 없다. 그를 아직도 시인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시적 감수성의 불감증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시인'을 놓아주고 그를 김영일이라는 본명을 가진 자연인으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그를 김영일로 바라보면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상처받을 일이 없는 것이다.

성균관대 황호덕 교수가 추리한 "'독거노인' 김지하의 심정은 실은 어버이연합 노년들의 마음자리에서 그리 먼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은 김지하를 김영일로 바라보기 시작한 새로운 시선의 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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