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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광장] 돈가스 곱빼기 되나요?

2013-01-25기사 편집 2013-01-24 20: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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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융진 지방부 부국장 yudang@daejonilbo.com

보름 전쯤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니 출출했다. 가끔 들르는 근처 김밥 집으로 시장기를 때우러 갔다. 한 사람은 김밥을 말고 다른 이는 주방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살폈다. 평소와 같은 풍경이다. 떡 라면 주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내 뒤를 따라 몇 명이 들어차는 것 이날 역시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모든 상황이 평소처럼 그대로다. 전화로 주문부터 먼저 받는 것도 판박이다. 그런데 이날의 전화주문내용은 달랐다. 그동안은 물 흐르듯, 아무 일 없듯이 마침표를 찍었다. 허나 주문은 그런 무료한 일상의 정적을 깨기에 충분했다.

전화를 받은 이가 주방으로 주문내용을 전했다. "돈가스 곱빼기 되나요." 어떤 답이 되돌아올지 순간 살짝 긴장이 됐다. 지금까지 평생 곱빼기는 짜장면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돈가스 곱빼기라니, 용어자체도 뒤통수를 쳤다. 주문한 이는 이 말을 일상용어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마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 것이리라. 즉 한 개라면 서운하고 두 개면 많고, 적당량이 하나 반이었을 테고 이를 표현하자니 일상화된 언어 즉 곱빼기였으리라. 곱빼기? 누구나 알아듣지 않는가.

될까 안 될까 사이의 긴장은 바로 풀렸다. 주방의 답이 "안돼"였기 때문이다. 가능하다고 대답을 했다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을 것이다. 주문과 접객태도 모두 상식을 넘어선 자극과 반응이 됐을 터인데 아쉬웠다. 주방 입장에서 돈가스 재료단위는 한 판이다. 반으로 잘라내면 나머지는 쓸모가 없어진다. 곱빼기를 주문받지 않았듯이 앞으로 반도 역시 주문받을 확률이 없어서 일까.

그렇다면 내가 주방에 있었다면 어찌했을까 주인공을 치환했다. 기꺼이 돈가스 곱빼기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주문이 재미있어 점수가 높다(판단은 엿장수 마음대로다), 되리라 여기고 주문했으나 거부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가능하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 주문자는 이 가게의 단골이 된다, 유통은 입소문에 좌우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안 될 것 같은 음식도 만들어주는데 동료에게 좋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남은 반쪽도 며칠 후 틀림없이 재차 주문이 올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후로 돈가스 곱빼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급기야 돈가스 곱빼기가 놓인 곳은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가변적인 지점이라고 비유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한 존재가 돈가스 곱빼기다. 가능이란 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돌이 호수에 떨어지면 잔잔한 호수 물은 동심원을 그리며 멀리 퍼져 나간다. 돈가스 곱빼기가 돌이 되어 뇌리란 호수에 떨어진 것으로 그려질 수 있다. 동심원은 개인에서 너와 나, 조직체, 회사, 사회, 국가 등으로 범위가 점차 확장된다. 나란 '점'에서 너와 나를 잇는 '선'이, 선이 교차되고 확장되면 삼차원의 종횡이 형성된다. 여기서 발생된 문제가 복잡다단할 것 같지만 해결의지가 있다면 돈가스 곱빼기는 만들어지겠다.

'남북화합평화통일줄다리기'가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통일과 관련된 사업은 통일부가 주도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당진시의 대표적인 전통적 민속놀이는 국태민안을 주제로 한 500년 역사를 자랑 하는 기지시 줄다리기 이다. 근래 들어 이 기지시 줄다리기가 국민적인 관심과 참여 속에 유명세를 탔다. 행사가 성공적이라면 다음 해는 내용을 다양하고 실속 있게 기획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다. 물론 당진시도 그랬다. 방향을 달리해 주제인 국태민안을 남북화합평화통일로 바꿨다는 점이 차이였다. 그러나 이 차이는 천양지차다. 왜 지자체가 통일사업이냐는 반응이 나왔다. 돈가스 곱빼기를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득으로 내부를 조율하고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등과 사업을 함께 진행 중이다.

돈가스 곱빼기가 넘지 못할 지점에 놓인 불가능한 고지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인식을 반영하듯 개인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고착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포기하고 다시는 넘을 생각조차 없다. 같은 사안이 일어나면 좌절하고 절망한다. 이 조직에서, 이 나라에서는 절대불가라고 대못을 밖아 버린다. 상하에서, 빈부에서, 노사에서, 진보와 보수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히 목격된다. 돈가스 곱빼기를 허하라는 절규와 허용불가라는 거절, 두 세력이 충돌하는 가운데 돈가스 곱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돈가스 곱빼기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양면성을 지닌 가변적인 지향이다. 만들어졌다면 즐거워 기쁠(喜樂) 것이고 만들 생각조차 못했거나 실패했다면 성나고 슬플(怒哀) 것이다. 이제는 많이 가셨지만 '하면 된다'는 주입된 자기계발 제일철칙이 있다. 돈가스 곱빼기 왜 못 만드나 '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에 자극받아 정말로 만들려고 나서면 이런 저런 이유로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다 세월 다가고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이유로 돈가스 곱빼기가 많이 만들어지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며 국가라고 정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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