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cuadam@daejonilbo.com

박범계는 대전에 지역구(서구을)를 둔 민주통합당 초선 국회의원이다. 그런 그의 주가가 요 며칠간 고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이면 누구나 뜨고 싶어하고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싶어하는데 박범계에게는 그 같은 기회가 힘들이지 않고 다가왔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라는 멍석이 펼쳐졌던 것이다. 청문회는 이틀간이었고 그는 특히 둘째 날에 의미 있는 활약상을 보였다. 만일 이 후보자가 국회의 인준 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박범계와의 조우가 불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박범계는 이번 청문회를 통해 정치자산을 불렸다. 전국에 얼굴을 알리는 계기로 작용하고 당내에선 쓸 만한 자원으로 각인되며 지역구에선 호감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체감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다. 운때도 따라 준 것 같다. 헌재는 박범계가 속한 상임위인 법사위 소관 기관이다. 새 헌재소장 인사청문위원으로 낙점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는 그렇게 됐다.

국회 인사청문위원으로 활동할 기회가 와도 그걸 지렛대로 삼는 능력은 자신의 몫이자 역량의 문제다. 박범계는 자신의 능력과 전문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한 경우다. 알다시피 그는 전직 판사다. 재판 주재자로서 기본 텍스트인 공소장에 의거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때까지 유·무죄를 심증 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법조인이었다. 그런 영향인지 판사 본색을 이번 청문회에서 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기색을 유지했다.

박범계는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정당의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정권교체기에 `이동흡 청문회`에 직면해 자신의 존재감을 재인식하게 됐을 것이다. 나아가 8개월차에 접어든 신예 국회의원으로서 과거 주군이 뻘 밭에 비유했던 정치 영역에서 자신이 서야 할 지점을 체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개 지역 국회의원들은 낯 내고 조금 우쭐해지고 괜찮은 평판을 들을 일이 드물다. 흔한 게 정부 예산 얼마 따왔다는 식이고 특정 법안을 발의했다는 지역구용 홍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박범계는 이번 청문회에서 전국구급 이미지를 쌓는 망외의 수확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은 움직임이 큰 사변의 전조가 된다는 이론이 있다. 그런 일반화의 명제가 박범계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턱도 없는 소리인지는 세월의 풍파를 더 겪어보지 않고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당파를 떠나 여의도 정치 질서 속으로 융화돼 가는 듯한 모습은 과유불급을 연상케 하는 게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서 스스로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지역사회와의 관계맺기 얘기를 꺼내면 정치인 박범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는 충북 영동 사람이다. 대전·충남과 충북 하고는 집단 정서상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대전 행정의 중심축인 둔산 지역에서 정치하겠다고 선뜻 결심하기란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선택을 자의든 타의든 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열풍이 예고될 즈음인 2004년 2월 열린우리당 서구을 당내 예비경선에 참여하면서였다. 경선 결과는 2위였고 결과적으로 출마가 당선인 그 해 4월 총선거는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일반적인 예상으로 보면 박범계는 그 후 대전에서 정치하겠다는 뜻을 접고 보따리를 쌀 줄 알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경향이 있었고 한동안 그런 시선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또 노 정권도 저물어 정권 초기 청와대 민정 2비서관에 이어 법무비서관을 지낸 그의 권력적 후광 효과도 사뭇 퇴색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버텼고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본선 낙선 경험을 처음 했다.

작년 4월 박범계는 금배지를 달았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인으로 커가는 행운을 잡은 것도 총선 재수 끝에 여의도행 티켓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대전 사람이 되겠다는 노력을 기울인 덕도 보았을 것이다. 아들이 지역구 소재 공립고교에 진학했으며 연세대 법대를 나온 그 자신은 굳이 한밭대 경제학과에 편입해 2011년 8월 학사 학위를 땄다. 부자가 대전과 학연을 형성한 것이다.

대전에서의 정치 행로와 관련해 박범계는 스토리가 있다. 좋게 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면에 어딘가에서는 지난 허물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지역 사람들이 박범계에 대한 관심과 관찰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뜻과 일맥 상통한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획득한 초반 성적표를 자기 정진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