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제일 오래된 무궁화백화점, 홍명상가 중앙데파트 철거에도 33년 지켜

무궁화백화점 입구에 쌓여진 문방구 박스들. 사진=강은선 기자
무궁화백화점 입구에 쌓여진 문방구 박스들. 사진=강은선 기자
낡고 오래된 흔적은 달갑지 않은 취급을 받는다. 뭔지 모를 불쾌함을 주거나 혹은 느낀다. 오래된 건물은 철거할 대상, 때가 탄 신발과 옷 등은 버려져야할 것처럼 여긴다. 버리거나 폐기시키는 것은 세월을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며 설득한다. 결함으로 생겨나는 상처와 괴로움은 오롯이 `낡고 오래된 것`의 차지다. 한 땐 그들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더랬다. 그 시절 흔적이 꼴보기 싫은 모습을 한 지금, 그들도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대전 중구 서대전네거리를 지나다보면 유독 주변에 비해 튀는 건물이 있다.

그곳을 보고 있노라면 1980년 대 한창 유행한 청청패션(위 아래 청 소재로 이뤄진 옷을 입은 스타일을 말함)이 떠오른다. 어찌보면 `촌스러움`에 대한 편협한 시각일 수도 있다.

다닥다닥 붙은 울긋불긋한 간판들은 보기만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다.

병무청 맞은 편에 위치한 이 건물은 홀로 시간이 멈춰있다. 사라지는 건물들, 새롭게 세워지는 아파트들 사이에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누구도 이 건물에 관심을 갖진 않는다.

최근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 진입로 덕분에 눈에 바로 들어오는 건물 옆쪽은 아파트형 공장을 연상시킨다. 1층은 도난방지를 이유로 셔터가 내려져있고 2, 3층 창가 측 상가는 문 닫은지 오래인 듯 불이 꺼져있고 창문에 장비가 늘어져있다.

건물에 들어가자 눈에 띄는 건 입구에 세워진 박스다. 1층 코너 상점인 문구점이 창고를 따로 사용하지 못하자 문구류 박스를 입구에 세워놓은 것이다. 콘트리트 벽과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낡고 휑한 느낌만 든다.

2층에 올라가니 계단 끝에 놓인 대형스피커에서 오래된 음악이 나온다. `쿵짝쿵짝` 리듬에 맞춘 구두 소리는 휑한 바닥을 울린다. 복도 끝의 미용실은 문닫은 지 오래고, 헬스장과 교회, 전당포만이 불을 켜놓았다. 3층의 카바레 문을 여니 낮 시간에도 빨간 조명 아래 남녀 3팀이 차차차에 한층 스텝을 밟고 있었다. 남녀 한 팀은 앉아서 그들을 관망했다.

"썰렁하죠?" 누군가의 말에 흠칫 놀라 뒤 돌아보니 1층 슈퍼마켓 주인 김영하(64·대전 용두동)씨다.

젊은이가 어슬렁거리자 궁금해 따라왔다는 김씨는 이 건물이 개점함과 동시에 입점해 근 30년 간을 지켜온 터줏상인이다.

"지금은 가장 볼품없는 건물로 꼽혀도 대단한 영광을 누렸던 곳이에요. 계단이 좁다는 원성까지 나왔었던 덴데…. 이제는 손님들 연령대가 50대 이상인 상가가 됐죠."

한 때 이 곳은 지역경제 호황기의 중심에 있었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 무궁화백화점이다.

촌스러운 건물 외관은 1980년 초 개점한 33년 전 모습 그대로다. 33년을 서있으면서 리모델링을 한 차례도 안했다. 1980년대는 경제 번창기로 당시 대전에는 백화점 신·증축 붐이 일었던 때였다. 대전 시내에만 홍명상가와 신도백화점, 대영상가 등이 기존 건물에 2-3층 증축하는 것은 물론 지하 3층 지상 12층의 동양백화점 역시 공사를 진행중이었다.

지하 1층(858㎡), 지상 3층(845㎡)의 구조인 무궁화 백화점은 80-90년대 홍명상가, 중앙데파트와 함께 도심의 상권을 담당했다. 홍명상가나 중앙데파트가 상점진열식인데 반해 무궁화백화점은 층별 코너 입점 가게가 깔끔하게 정리돼있었던 고급백화점으로 이름을 날렸다.

개점 당시에는 당대 인기를 구가했던 배우 연복순, 이정길, 김영애, 고두심, 주현 등이 초대손님으로 참석했고 층마다 관리하는 경비원 4명에 청소원도 2명이 계속 상주했더랬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에 경비가 4명이나 있었던 건 당시에도 파격적인 운영방침이었다.

1층은 문구점, 나전칠기, 숙녀화, 약국 등이 입점했고 2층은 아동·숙녀복 등 의류코너, 3층은 예식장, 지하는 시식코너까지 마련된 마트가 들어서 손님들의 발길을 끌었다.

그런 번영도 잠시. 개점한지 5년이 지난 후 건물주가 부도를 내면서 입주 상인들은 평당 분양을 받으며 관리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식장이 문을 닫으면서 3층엔 카바레가 들어섰고 의류 코너는 1층으로, 영화관이 2층에 자리잡았다. 옆 건물에 동시상영 2개관이었던 성보극장이 있었지만 이곳 극장도 꽤 성황이었다.

김 씨는 "그 때도 젊은 층보다는 20-30대나 지갑을 열 수 있는 주부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면서 "보면 계단도 80년대에 지어진 건물치고는 꽤 넓은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영원히 피어있길 바라는 마음에 아마 이름도 무궁화로 지었을 거라는 게 인근 주민들의 설명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무궁화란 이름은 퇴색됐고 시민들에게도 잊혀졌다.

지하 1층에서 20년 동안 노래방을 운영한 한상태(64)씨는 "최초 입점 때 보증금이 500만 원, 월세가 5만원일정도로 시세가 대단했는데, 현재 월세가 5만원인 상태로 상권은 거의 죽었다고 보면 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1980년대 후반 대전 둔산권으로 신도심이 생기면서 원도심이 돼버렸고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소비자 지갑이 닫힌 채 2004년 인근에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생기면서는 그나마 있던 손님도 뚝 끊겼다.

2009년 세월을 견디지 못한 채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35년의 역사를 닫을 때도 무궁화 백화점은 질긴 목숨을 이었다.

"리모델링도 좀 하면 나으련만 도통 그러지 못한다니께." 지나가던 어느 손님이 툭 던지자, 한 씨는 "분양을 했기 때문에 생길 수 밖에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빠져나가고, 바싹 말라버린 낙엽처럼, 누군가의 발길에 치이고 부서지듯,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 거 옆에 건물 세워지고 해도 여기만 이런 건 투자나 개발하려는 사람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 하루에 손님 한 명도 안찾는 가게도 있지만 다시 또 예전의 모습을 금방 찾겠다는 생각은 다들 하지 뭐."

한 씨가 애써 한 얘기, 30년 동안 세월을 이겨온 무궁화 백화점이 하고픈 말은 아닐까. 30년 전 대전 3대 백화점이었다는 옛 명성은 잊혀지고 있지만 그 모습은 남아서 다시 부활의 시간을 꿈꾸고 있다.

강은선 기자 groove@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무궁화백화점에는 1층에 입점한 슈퍼마켓과 문방구 등에 몇몇의 손님만 있을 뿐 상가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강은선 기자
무궁화백화점에는 1층에 입점한 슈퍼마켓과 문방구 등에 몇몇의 손님만 있을 뿐 상가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강은선 기자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백화점은 33년의 세월 풍파를 고스란히 맞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진=강은선 기자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무궁화백화점은 33년의 세월 풍파를 고스란히 맞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사진=강은선 기자

강은선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