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冊巨里 : 文房圖 : 冊架圖, 민화, 수묵채색, 86.5× 33cm, 작가미상, 조선)
책거리(冊巨里 : 文房圖 : 冊架圖, 민화, 수묵채색, 86.5× 33cm, 작가미상, 조선)
책거리는 학문을 숭상했던 우리 겨레의 생각이 낳은 독특한 민화이며 정물화풍의 그림이다. 또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학문을 숭상하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학자의 세계, 학문이 주인이다. 그 위대함으로부터 인간이 조준당하는 역원근법으로 그렸다.

이는 서양의 현대 미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화법이다. 또 주문 생산한 그림으로 치밀한 비례와 안정된 구도가 그림의 격을 높여 준다.

민화 책거리는 조선후기에 궁중, 상류층의 장식화로 유행한 책거리가 민간으로 퍼지면서 발달한다. 주로 대형 병풍으로 만든 궁중 책거리에 비해 민화 책거리는 민간의 주거 공간에 맞게 키가 작은 병풍 그림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책가 대신 책을 얹던 책상 위에 책과 기물을 쌓는 양식의 책거리가 유행한다.

당시 책거리의 유행은 정조와 관련이 깊다. 정조는 궁중 화원들에게 책가와 책거리를 그리게 하였고, 집무실인 창덕궁 선정전의 어좌 뒤에 오봉병 대신 책가도 병풍을 장식하고는 만족해했다는 일화가 기록으로 전한다. 당시 사대부들이 애호한 화려한 책거리 그림에는 도자기·청동기·문방구 등이 책과 함께 진열돼 있다. 이 물건들은 당시 연나라 수도에 사신으로 동행했던 역관들이 북경의 골동품 시장인 유리창에서 수입한 중국제품이다.

책거리(冊巨里 : 文房圖 : 冊架圖, 민화, 수묵채색, 86.5× 33cm, 작가미상, 조선)는 책을 중심으로 문방사우나 이와 관련된 물건들을 구경한다는 뜻이다. 주로 선비들의 사랑방이나 서재를 장식한 그림으로 인격이 높고 학문과 덕행을 쌓기 위해 애쓰는 문인들의 기대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책, 붓, 어의, 종이, 벼루, 꽃과 과일, 악기종류, 안경, 새와 토끼, 부채, 향로 등이 배치된다. 이것은 다른 민화와는 달리 입체적 느낌이 나타나도록 사물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책가도의 소재들은 입신양명과 가문의 번창을 바라는 것들이다.

책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을, 수박, 오이, 포도처럼 씨가 많은 덩쿨 식물로 자손의 번창을, 복숭아, 수석, 불로초는 장수를, 화병은 평안을 뜻한다. 연밥은 연속 과거에 급제하라는 뜻이다. 책과 문방구류는 배움과 선비정신, 공작꼬리와 산호는 고위 관료, 물고기는 여유와 이익, 수선화는 신선, 매화는 지조와 절개, 연꽃은 순결과 탈속·연생귀자, 국화는 은거처사의 절개, 모란은 부귀, 석류는 다자·다산, 불수감은 부처와 불교·부, 귤은 큰 행운, 복숭아는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그렸다.

책거리의 특징은 화면 전체의 구성적 측면이 기하학적 추상미를 지녀 현대적이다. 색채는 대부분 높은 채도의 강렬한 원색이다. 자유로운 다시점 현상을 사용한다. 책거리는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을 닦고 나라에 이바지하고자 한 조선 선비의 취향과 그들의 소망을 은유적으로 반영한 그림이다.

현광덕 미술교육가·조각가·대전버드내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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