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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청론] 난독증 시대

2013-01-22기사 편집 2013-01-21 21: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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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작가

어떤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그것을 '난독증(難讀症)'이라 한다. '난독(難讀)'이라는 명사는 텍스트가 난해하거나 어렵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에 '증(症)'이라는 접미사를 사용할 때 그것은 텍스트를 읽는 사람의 수준이나 상태의 저급함에 포커스가 맞추어진다. 즉 난독증은 텍스트을 읽고 이해할 수 없는 독자의 저급한 수준이나 그로 인한 부조리를 지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후천적인 요인에 '증(症)'이라는 접미사가 붙는 순간 그것은 병리적인 문제로 분리된다. 하지만 이것은 지능에 이상이 있어서 나타나는 생리적 질병이 아니라 읽기 훈련(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잘못 받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후천적 질병이다. 교육의 차원으로 논의를 확장하면 그것은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확대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다, 난독증은 사회병리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높은 교육열과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심각한 난독증에 빠져 있다. 대입 시험에서 국어의 사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시행하는 언어영역이나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는 논술시험 등이 깊이 있는 읽기와 쓰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기계적인 성적 만능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자로 된 텍스트 독해는 가장 기초적인 능력이다. 이것이 안 되면 더 높은 차원의 텍스트에 접근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지성계를 보면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텍스트 읽기 훈련이 제대로 안 된 인사가 사회 지도층의 자리에 오르거나 교수나 기자와 같은 지성계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계몽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이성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18세기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소인국 거인국'이라는 가벼운 동화로 읽은 사람들,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복고기에 나타나는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휴머니즘과 공화정을 향한 정치적 역정을 다룬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권선징악형 동화로 읽은 사람들, 정치적 대립과 긴장 속에 인간의 현재적 삶을 이해하고 우주적 구원을 설파한 예수의 일대기를 탈색시켜 윤리적으로 타락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미신적 신앙으로 성경을 읽은 사람들, 이들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모범답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만이 정직한 삶의 궤도라고 믿고 따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이 사회 지도층에 오를 때 사회가 저급해진다. 이들은 시장만능주의와 기계적 성적지상주의의 세례를 받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기능적 지식인이라 한다. 기능적 지식인은 텍스트에 대한 독해 능력이 부실하거나 텍스트의 담론을 외면하여 자기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다.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니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니 하는 신조어들은 한 사회의 담론을 담당해야 할 교수와 언론인들이 그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관계에 입문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담론은 단순하고 무식하며 과격하게 된다. 선거철만 되면 이러한 부류의 정치언어들이 텍스트를 얼마나 모독하는지를 지겹도록 목도하게 된다. 이는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모든 것을 수치로 환산하고 효율성으로 재단하는 시장만능주의로 텍스트에 대한 모독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파괴하고 재구성하여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우리 사회의 불순한 의도가 텍스트를 살해했던 것이다. 이것은 텍스트에 대한 모독이다.

난독증에 빠진 지성은 권력과 세속적 명리에 쉽게 굴복하고 힘을 잃는다. 지성이 진실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때 군대와 토건족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이런 사회는 썩은 사회다. 썩은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벌레의 향연은 얼마 가지 못한다. 자신의 명리에 밝은 만큼 시대와 인간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난독증 탓이다.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높은 지성의 능력이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수많은 독서를 통해 사유의 투쟁을 지속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독서는 투쟁이고 독해(讀解)는 그로 인해 얻어지는 지적(知的)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소유한 자를 우리는 지식인이라 한다. 지식인의 고대적 표현은 예언자다. 예언자란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점술가(seer)가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시대를 꿰뚫어 보고 진실을 말하는 자(prophet)다. 기술과 시장이 예언자를 대신하는 시대야말로 암흑의 시대다. 난독증이 불러온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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