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1959~)
저 물의 젖은 손수건도 보오
물속에 4人가족 자동차가 살고 있소
물은 고요하고 깊으오
물의 벽지를 바꿔도 좋소
물의 침대를 새로 들여도 괜찮소
자동차는 바닥의 진흙에 박혀 더 산뜻하오
유서는 없었소,
저들은 지상에서
맨몸으로
수 없이 폭풍과 눈보라를 찍었소
그러니, 저 물에 빠진 도끼를 다시 꺼내지 마오
저들이 어떻게 사나 가끔씩
돌을 던져보아도 좋소
물가까지 쫓아온 빚쟁이들도 안부를 묻고
가오
찢어진 물은 곧 아물 거요
벌써 미끄러운 물위로 바람이 달리고 있소
저수지는 푸른 눈을 갖고 있다. 두렵기도 하지만 매혹적이기도 한 눈, 가끔씩 현실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 번 닫히면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수면의 문 때문에 그곳에 빨려 든 사람들은 원래 모습으로는 돌아올 수 없다.
초등학교 소풍 때 물 위에 떠다니는 여자의 얼굴을 본 후로, 저수지는 나에게 너무나 두려운 곳이 되었다. 하지만 시인이 시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그곳의 분위기는 오히려 따뜻하기까지 하다. '물의 벽지를 바꿔도 좋'고 '물의 침대를 새로 들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표현을 통해, 그곳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죽음이라는 극단의 선택으로 들어선 공간을 이토록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4人가족'이 '지상에서/맨몸으로' 감당했을 '폭풍과 눈보라'의 생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현실 고통이 쫓아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에, '빚쟁이들도 안부를 묻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기에, 저수지는 그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다만 '찢어진 물'처럼 '곧 아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상처를 다독인다. 그것이 지상에 남아 있는 자가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위로이기에. 지금도 세상의 어딘가에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마음으로 웅크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이곳이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이 충분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인·한남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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