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내가 온다 박범신 지음 맹그로브숲·328쪽·1만4800원

'전차는 정말 옛 친구처럼 정다웠습니다. 전차가 빠른지 걷는 사람이 빠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사람과 차가 속력을 다투지 않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합니다. 행복으로 가는 속도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달구지 속도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속도, 그 속도로 흐르면서 내다보는 사람들이 참 정답고 아름답습니다.'(96쪽)

광고 카피의 한 대목처럼 어느 샌가부터 아이들의 장래희망에서 '연예인' 이외의 것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불과 십수년 전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꿈꾸던 아이들은 다 사라지고 눈앞의 화려함만 좇는 아이들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아이들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숨 가쁘게 휘몰아치는 세상살이에서 너나없이 성공을 강요받는 사이 어쩌면 아이들은 진짜 꿈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언제 기성세대가 지금 어떤 꿈을 꾸는지, 어떻게 꾸어야 하는지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던가.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평생을 두고 회상할 만한 학창시절 학교와 학원 사이에서 쳇바퀴 도는 한 마리 다람쥐가 된 것일 터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아직 혼자만의 여유를 갖지 못한 청춘들에게 박범신의 글은 순간의 안식을 준다. '걸어서 별까지 가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도시 '이스탄불'에서 그의 여정을 곱씹고 있노라면 잊혔던 꿈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여기에 터키로의 여정에 동행한 박민정 포토그래퍼의 사진은 감동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한때 대통령을 꿈꾸던 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인다. 학창시절 대통령을 꿈꾸었을 수많은 청춘들은 또 어디서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 장래희망에도 유행이 있다면 단지 '대통령'에서 '연예인'을 거쳐 가는 흐름일 뿐 내가 아이들의 인생을 측은히 여길 까닭도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혀를 끌끌 찼던 대상이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음을 깨닫는 순간 문득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결국 박범신이 하고자 했던 말은 이런 것이 아닐까. 여행의 의미는 내 안의 '시인'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책은 이미 수없이 존재해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인생의 첫 실패를 위로하는 완곡한 청유형이라면 박범신의 '그리운 내가 온다'는 무뚝뚝하지만 그간 기성세대가 소홀히 해온 책무에 보다 충실한 부드러운 명령형이다. 박범신은 책에서 '혼자만의 곳간을 위해 더 부자가 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꿈이라면, 청춘아, 차라리 꿈꾸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속도만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대한민국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청춘들. 단조로운 수직상승의 직선만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박범신은 그렇게 또 다른 길을 내보이고 있다.

김대영 기자 ryuchoha@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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