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daejonilbo.com

#사분오열(四分五裂)입니다. 대선 후유증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인수위가 가동되고 정부 조직개편안까지 발표됐지만 민심의 시계는 작년 12월 19일에 멈춰있습니다. 겉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온통 덧난 갈등과 분열의 상처 뿐입니다. '우리 대통령 만들기' 싸움이 계속 중이라는 착각마저 듭니다. 이념과 세대, 지역별이 사분오열돼 여전히 살벌한 분위깁니다.

SNS상에서는 연일 격한 반응과 함께 적대감을 쏟아져 나옵니다. 대선이 끝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수그러들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대선 재개표 요구는 그나마 점잖은 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나치 치하 독일'에 빗댄 발언에 '정치 걸레'로 맞서는 등 험담의 성찬이 도를 넘은 지 오랩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 '기초 노령연금 폐지'에서는 말문이 막힙니다. 5060세대가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박 당선인에 몰표를 줬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억지입니다. 이제 선거가 축제란 말이 철 지난 유행어가 된 겁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거 후유증에 매몰돼 집단적 자해행위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온 나라를 전염시킨 집단적 정신분열증 치료는 박 당선인이 의사로 나설 때 가능 합니다. 임기 5년 동안 줄기차게 치료의 손을 내미는 게 다른 어느 정책보다 중요합니다. 거부해도 멈춰서는 안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밀봉인사', '불통 인수위'는 일방주의지 결코 역지사지가 아닙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을 모르듯 해서는 곤란합니다. 벌써 52% 지지층 중 박 당선인의 불통 이미지에 정나미가 떨어져 식상해 하는 층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취임 전 지지층이 48대 52로 역전될 가능성도 배제 못합니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큰 축제였던 때가 있었지요. 그 때는 학부모의 운동회이기도 했습니다. 학부모들도 자녀들과 청군 백군으로 나눠 핏대를 세워가며 뛰고, 응원을 합니다. 하지만 운동회가 끝나면 이긴 자기 자식이든 패한 이웃집 자식이든 구분없이 우리의 귀여운 아들이고 딸로 됩니다. 대통령은 운동회에 참석한 학부모 마음이어야 합니다. 박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는 새누리당 국민이고 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는 민주당 국민식이 돼선 곤란합니다. 내가 지지한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이고 네가 지지한 대통령은 너희 대통령이 되는 것도 불행입니다.

상대를 헤아리지 못하면 오만과 독선이란 꼬리표가 붙기 십상입니다. 소통을 외면한 지나친 일방주의는 승리에 도취된 굿판으로도 비쳐질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옴짝달싹도 못하게 했던 '촛불 집회'의 망령을 깨우는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액운을 물리칠 부적은 역시 역지사지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도 문젭니다. 박근혜라서 할 수 있다는 식은 곤란합니다. 책임총리제, 장관 중심의 부처운영을 한다고 공언을 했으니 믿음이 갑니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수위 운영을 보면 썩 미덥지가 못합니다. 그릇된 판단이나 정책도 '박근혜식 스타일'로 포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화가 박 당선인이라는 변수를 만나 양화를 구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박근혜식'이 곧 만사형통일 수는 없습니다.

잘못도 자기 사고에 매몰되면 주위의 비판이나 충고는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물꼬싸움이 좋은 옙니다. 남의 논 바닥이 거북 등딱지처럼 갈라지는 건 별거 아니고 자기 논 벼 타죽는 것만 안타까워 이웃사촌과 멱살잡이를 하는 거 아닙니까.

세간에 취임 후 '불통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습니다. 대통령이라고 정책을 펼침에 있어 야당에 꼭 이겨야 하고 다수의 국민이 반대해도 자기 주장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식은 뒤떨어진 발상 아닙니까. 가끔 못 이기는 척 져주는 것도 폼이 나 보이지 않습니까. 물꼬 싸움식의 국정 운영은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상은 결코 아닐 겁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 결론입니다. 국민의 신의를 잃어버리면 정권이 바로 설 수 없다는 뜻으로, 선거철만 되면 회자되는 사자성어지요. 대통령 임기 5년을 아우를 수 있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모두가 허삽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행정가이면서 정치가입니다. 갈등·대립·반목을 용광로에 담아 녹여내는 큰 틀의 정치를 펼쳐야 합니다. 대탕평 조각이 그 첫 걸음이 될 것 입니다.

지난 대선이 보여준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입니다. 다른 어떤 공약보다 시대정신을 거스를 수 없는 법입니다. 양극화, 세대갈등, 국민행복, 여야 관계도 시대정신의 프레임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무신불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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