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 사회부장 yong@daejonilbo.com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잦고 한파까지 혹독하다. 길은 미끄럽고 막히다 보니 일상은 곤욕스럽다. 순백색 설국(雪國)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도시는 불편하고 서민들의 겨울 나기는 더 힘겹다. 가뜩이나 불경기의 그늘이 짙어가는 마당에 폭설은 활력을 떨어 트리고 발목을 붙잡는다.

눈에 갇힌 도시는 씁쓸한 이면까지도 들춰 낸다. 무신경하고 무관심하다. 좀처럼 눈을 치우는 사람들을 찾아 보기 어렵다. 아파트 단지는 개인화된 도시의 단면을 드러낸다. 으레 단지 내 경비원이 도맡아 눈을 치우는 일이 반복되지만 나서서 거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눈이 내리면서 경비원들은 눈과의 전쟁을 벌이는 판국이다. 도시인들의 달라진 의식과 태도는 섬뜩할 정도다. 간혹 단지 내 도로나 주차장에 눈이 치워져 있지 않다 싶으면 경비실로 차가운 시선이 쏠린다. 당연히 `내`가 아닌, 경비원의 몫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언제부터 내 집 앞의 눈 치우기가 `내 일`이 아니었던가.

대전의 주택가는 눈에 갇혀 있다. 골목길이나 특히 비탈진 언덕길에는 평소보다 많은 차량들이 눈을 잔뜩 뒤집어 쓴 채 줄 지어 서 있다. 내린 눈이 얼고 녹았다가 얼기를 반복하면서 차량 운행은 커녕 걷기 조차 위태로울 지경이다. 그런데도 역시 내 집 앞의 눈 치우기는 실종돼 있다. 워낙 눈이 자주 많이 내린 탓도 있지만 `서로 함께` 눈을 치우는 풍경은 10-20년 전의 과거 속 풍경으로 멀어져 있다. 찌들고 쫓기는 일상에 여유가 없다고 쳐도 좀 심하다 싶다는 생각은 이심전심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물론 다 같이 불편해도 남이 안치우니까 나도 안치운다는 배타적 사고는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다.

골목길 뿐만 아니라 2차선 이상의 도로 주변의 보행로 등도 풍경은 다르지 않다. 대전의 각 구에서 2007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건축물 관계자의 제설 및 제빙 책임에 관한 조례`는 세태의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건축물 주변의 1.5m 구간에 대해, 낮에는 눈이 그친 후 4시간 내에, 밤에는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치우도록 권장한다. 한 마디로 `제발 눈 좀 치우라`는 조례이다. 타 지역의 경우 눈을 치우지 않으면 최고 1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리기도 하지만 대전지역에서는 강제성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이 조례를 알고 있는 시민들은 드물고 지키는 사람은 더 더욱 드물다. 실효성이 없는 조례를 만들어 서라도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자는 구상에는 이 겨울의 폭설처럼 답답증이 쌓인다.

그러고 보면 도시의 벽과 담은 갈수록 두터워져 있는 것 같다. 사회 현상으로 확장해 생각해 보면 공동체 의식은 점점 옅어지고 있고 배려와 관용을 통해 더불어 나누는 이타적 사고도 축소 지향형이다. 나의 편의와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그에 반하는 사안에 대해선 각을 세워 대립하는 것에 능숙하다. 대립은 갈등과 불신을 키우고 분열과 냉소주의가 확대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번 대선은 양면의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노정했다. 지역 대립과 계층 대립 뿐만 아니라 세대 간 대립까지 확대됐다는 평가와 반성에는 화해와 통합이라는 가치가 오버랩 된다. 분열과 대립의 구도가 확장됐고 그 만큼 통합은 시급한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대선의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 국민의 의식 저변에는 사회의 불합리한 측면에 편승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상식과 순리를 인정하며 화해와 타협을 하고자 하는 통합 지향의 의식이 잠재돼 있을 법하다. `국민 대통합`이라는 어젠더는 대선 프레임의 키워드로 제시됐다기 보다 국민들 스스로의 갈증과 갈망이 표출된 결과라는 분석도 일면 타당해 보인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에는 우리 사회의 촉각이 쏠린다. 단지 국민 의식 변화를 통해서는 대통합의 명제가 온전히 담보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민생과 복지, 빈부 격차의 해소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꿈과 희망이 단지 가능태가 아닌 현실태로 구축돼야 한다. 그러자면 누군가는 특권과 권위를 내려 놓아야 한다. 국정과 정치는 상식과 순리에 의해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고 더 이상 반칙과 변칙은 안된다.

눈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누군가는 먼저 치워야 하고 그러면 함께 치우는 사람이 생기고 결국은 다 함께 치울 수 있다. 내가 먼저 치우는 것이 것이 순리이고 그 것은 또 다른 동행을 가능케 한다. 그 동반의 길은 미끄럽고 위태로운 빙판 길이 아니라 말끔하게 열려 함께 가는 길이다. 사회의 지도층과 특권층부터 기득권을 내려 놓고 삽과 빗자루를 들어야 한다. 폭설에 닫힌 사회를 보면서 절망하기에 앞서 미래의 희망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화해와 통합에 대한 성찰이 확대되고 그 열망도 커져 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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