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 혼 맥을 잇자

계사년(癸巳年) 새해는 충청남도가 독립적인 지방행정단위로 태어난 지 117주년 되는 해다. 또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분리 독립한지 24주년을 맞는 해다. 지난해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새로운 광역지자체로 공식 출범하면서 충청권은 그야말로 2시 2도의 새로운 거버넌스로 탈바꿈했다.

세종시 출범은 충청 광역행정은 물론 지역주민생활과 경제, 사회발전 등에 여러 모로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반대로 경제활동 기능과 공간의 변화 없는 지방행정구역의 인위적 분리로 주민생활의 불편과 손실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시 출범에 따른 충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충청권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이를 위해 대전과 세종시, 충남, 충북 등의 상생협력이야 말로 충청권 역량 결집을 위한 최우선 과제다. 물론 행정구역이 다른 지역간 상생협력은 정책적 당위성이나 정치적 의지 표명 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몇 가지 전제조건과 핵심과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대응책이 필요하다. 지역간 갈등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역량 결집 막는 갈등 사례=충청권이 갖고 있는 갈등 요소는 많다. 대전을 중심으로 했던 오랜 기득권을 내려 놓는 작업부터 만만치 않은 저항에 직면해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세종시 수정안 저지로 똘똘 뭉쳤던 충청권이 사분오열됐던 단적인 예다. 전국 지자체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유치 경합을 벌이는 와중에 충청권 내부에서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논리가 횡행했다. 민주당은 '호남 양보론'을 꺼내 들었고, 당시 한나라당 충청권당협위원장들은 중앙당의 결단을 촉구하며 '당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더구나 김호연 의원(새누리)은 기존의 세종시를 거점지구로 하고, 대전 대덕특구와 오송·오창단지를 기능지구로 묶는 방침을 뒤흔들며 자신의 지역구인 천안·아산지역을 거점지구로 하고, 나머지를 기능지구로 지정하자는 변형된 주장을 펼쳤다가 빈축을 샀다. 그야 말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이었고, 정부가 충청권의 목소리를 온전하게 들어주지 않는 빌미가 됐다.

정부의 '호남고속철도 오송역 분기 및 노선 결정' 역시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의 산물이다. 그만큼 부작용이 크다. 당장 충청과 호남의 최대 도시인 대전권을 경유지에서 빼놓으면서 권역간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 지난 2005년 전라도에서 호남선은 호남 사람을 위한 노선이니 서울과 최단거리의 철길을 놓아야 한다는 엉뚱한 논리를 내세웠고, 이에 편승해 충북은 호남고속철 오송역 경유를 주장하면서 중부권 최대 도시인 대전을 거치지 않고, 세종시 남단을 가로질러 공주 쪽으로 빠지는 이상한 노선을 만들게 했다. 전통적인 호남선 축(軸)인 대전권이 제외되면서 제2의 행정수도인 세종시를 직통하는 노선도 없고, 200만 대전·세종·계룡·논산시 주민들이 전주와 광주, 서울을 오가는 길을 잃어버린 셈이다.

서울에서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고속철도 사업에 10조 5417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국가사업이면서도 인구 1만 명에 불과한 오송(계획인구 14만 명)을 배려하려다 정작 200만 명이나 되는 큰 시장을 망각했다며 계룡대와 육·해·공군 본부, 논산 육군훈련소 등이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충남도청사 임대와 관련한 충남도와 대전시의 낯뜨거운 흥정 역시 대표적인 갈등 사례다. 14억 원의 임대료를 둘러싸고 중앙정부 입장까지 제멋대로 해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책 사업을 놓고 전국 광역 자치단체와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정작 충청권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 지역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큰 일"이라며 "정부 행정의 일관성 부재가 1차적 원인이지만 세종시 수정안 저지 당시처럼 충청권이 힘을 모아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대승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대되는 협력 사례=충청의 정체성인 기호유교문화권을 다핵구도로 이뤄내려는 노력이나 충청권 광역관광벨트를 구축하려는 구상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 또 충청권 국방과학산업클러스터 구축 역시 4개 시·도의 공조가 절실한 신성장 동력이다.

'충청 기호유교문화권'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충청권이 한 목소리를 냈던 지역 공약화 어젠다 가운데 유일한 '인문' 정책이다. 유교는 윤리적 가치가 시장 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보호 기제이면서 근대화 과정의 부정적 산물인 가치의 해체, 인간성 소외 등을 해소할 보루다. 갈수록 개인화되고, 다문화 가정과 탈북 새터민 증가로 전통적인 정체성이 흔들리는 대한민국과 충청권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다.

그동안 충청 기호유교 사업은 국비 2230억 원, 충남도 1115억 원, 논산시 1115억 원, 기타 770억 원 등 총 523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표류했다. 충청권이 기호유교사업을 대선 공약화하고, 한 목소리를 낸 만큼 경북의 유교문화권 개발 사업과 특색을 달리하면서도 상호 보완하는 콘텐츠 개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특히 수익성 높은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핌피(PIMFY) 대신 전략적 구상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대전시의 동아시아유교문화원 건립에 4개 시·도가 공동참여해 인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하다.

'충청권 국방클러스터'도 기대를 모은다. 사업비만 1조 5000억 원(추계)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국책사업으로 선정되면 충청권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막대한 전·후방 연계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방클러스터를 범 충청권 현안으로 선정하려는 움직임도 바람직하다.

각 지자체의 사업 내용도 △연구소·기업·기관 집적의 방위산업단지 및 물류·서비스지원센터 조성(대전) △국방대 논산 이전과 국방산업단지 조성(충남) △MRO단지와 항공정비복합단지 조성 △국방산업단지 조성(세종) 등으로 분산해 선택과 집중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관건은 충청권 지자체의 협력과 지역 정치권의 초당적 의지다. 정치인과 공무원,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추진위를 하루 빨리 구성해 국방클러스터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충청권 광역 문화관광벨트'는 충청이라는 하나의 공간 단위 안에서 지자체 별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는 상호협력 방안이다. 세종시와 충청권의 상생발전을 위해 4개 시·도가 하나의 광역적인 정체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소진광 가천대 대외부총장이 "충청은 역사적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지리적 상호작용은 서울과 부산, 광주 등을 연결하는 삼각지로 분산돼 있는 실정이다. 동질적 공통 문화기반을 구축하는데 역점을 두고, 이를 통한 광역적 지역경제 작동 체계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 내용을 되새겨 들어야 할 때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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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5일 오후 연기군청 대강당에서 열린 세종시와 충청권 상생발전 구상 정책세미나에서 충청권 4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서로 손을 맞잡고 상생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 좌측부터 안희정 충남지사, 염홍철 대전시장, 이시종 충북지사, 유한식 세종자치시장. 사진=대전일보 DB
지난해 6월 5일 오후 연기군청 대강당에서 열린 세종시와 충청권 상생발전 구상 정책세미나에서 충청권 4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서로 손을 맞잡고 상생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 좌측부터 안희정 충남지사, 염홍철 대전시장, 이시종 충북지사, 유한식 세종자치시장. 사진=대전일보 DB

권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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