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향 '교활·간사함' 근원 우리 선조 지혜로운 영물로 인식 유럽선 의술·스태미나 심벌 간주

 雲山 조평휘
雲山 조평휘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뱀띠 해'이다.

뱀(巳)은 12 지의 여섯 번째로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 정사(丁巳), 신사(辛巳) 등 5번 순행한다. 뱀(巳)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 4월에 해당한다.

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성경에 등장하는 교활하고 간사한 '뱀'이 무의식 중에 떠오르지 않을까? 하느님이 그렇게 따먹지 말라고 경고한 선악과를 따먹어도 된다고 이브를 현혹해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인 뱀. 기독교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서양에서는 이렇게 뱀 하면 악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한다.

아니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뱀의 외형에 혐오스럽다는 느낌이 앞서지는 않을까? 비늘에 둘러싸여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소리 없이 발 밑을 스쳐 지나가는 공포스러움,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 무서운 독을 품은 채 허공을 날름거리는 길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등등 뱀의 외형은 가히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하기 제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동안 서구문명의 영향 아래 살면서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뱀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뱀은 영생과 재물, 복을 상징했다. 고구려 고분에 나오는 복희와 여와의 벽화에 보면 인두사신을 한 벽화와 뱀을 신으로 숭배하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던 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뱀을 신성시 했던 것이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 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 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 재생(再生)→ 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로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 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민족에게 뱀이 등장하는 꿈은 길몽을 상징했다. 꿈에서 많은 뱀을 보면 일이 잘되며 뱀을 만지는 꿈은 부자가 되고 뱀이 치마 속으로 들어오면 잉태를 하게 되며 구렁이에 물리는 꿈은 큰 인물이 될 아이를 낳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이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이시미)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어떤 계기를 가지면 용으로 승격한다는 민속체계가 있다.

뱀의 범주에는 이무기, 구렁이, 뱀이 다 포함된다.

서양에서도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기 전에 뱀은 악의 근원이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뱀은 치료의 신으로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이 의술신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 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의 신성한 하인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하여 탈피함으로써 새로운 정력을 소생시킨다는 스태미나의 심벌로 간주돼 왔다.

지금도 군의관의 배지는 십자가 나무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뱀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의 문패에서도 이 뱀의 형상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과거 이 집이 약국이었음을 나타낸다.

한편 뱀은 민간의료의 약용으로도 쓰이고 있다. 약용으로 쓰는 뱀은 주로 살모사, 구렁이, 칠점사, 독사, 독뱀 등이다. 뱀은 정력강장 작용을 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강하작용을 하며, 일체의 허약성으로 오는 질환에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뱀 허물도 중요한 약재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에서도 뱀 허물이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뱀 허물이 정창, 모든 상처에 파리와 구더기를 없애는데, 태(胞衣)가 나오지 않을 때, 경풍(驚風) 등이 쓰인다고 했다.

최신웅 기자 grandtrust@daejonilbo.com

雲山 조평휘

△ 198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 1992년 금강미술대전 운영위원

△ 1994년 충남미술대전 운영위원장

△ 現 한국미술협회 고문

△ 現 목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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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평휘 作 '계사원년'
조평휘 作 '계사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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