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음악가 이야기 - 슈만 [1810 - 1856]

 이상철 순수기획 대표
이상철 순수기획 대표
'그날, 자살하려고 집을 나섰을 때의 아버지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잠시 동안 어머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옆방의 문이 열렸고, 아버지가 거기에 잠옷 바람으로 서 계셨습니다. 얼굴은 몹시 창백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보시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 쳤습니다. "오오, 하나님!" 이라 말한 뒤 아버지는 사라지셨습니다. 아버지 방으로 달려가보았으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가 방에서 다시 나왔을 때 멀리서 부터 사람들이 크게 소리 치며 우리집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이 아버지를 강에서 끌어올렸던 것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아버지는 두 사람의 팔에 앉긴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셨습니다. 마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안마당까지 들어와 있었습니다. 하젠클레버 박사와 감시인이 아버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올랐습니다.'

슈만의 딸은 1854년, 슈만의 만년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슈만은 여덟 시간 뒤 엔데니히 요양원에 도착해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 이후, 슈만의 상태는 점차 회복되어 산책도 하고 다시 작곡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안증이 재발하여 실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왔다갔다 하며, 때로는 무릎을 꿇거나 손을 비틀어짜 기도 하였다.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은 오남매 중의 막내로, 저술가이며 출판업자였던 아버지는 슈만이 태어난 1810년부터 고질화된 신경질환을 앓아 평생 이 병에 시달리다가 53세에 사망한다. 슈만 역시 계속되는 정신질환으로 만년에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슈만은 교양 있고 유복한 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명랑한 소년이었지만 15세 나이에 부친과 누이를 사별한다. 곧 이어 형수와 형의 죽음을 잇따라 맞이하여 점차 성격이 과묵하고 폐쇄적으로 변하였다. 형수의 죽음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슈만은 4층의 창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한다. 이후 그는 위층에서 사는 것에 공포를 느껴 같은 집 아래층으로 이사하였다. 이 고소 공포증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으며 18세 때의 일기 속에는 이미 환청의 경험을 담고 있다. "영원한 음악이 밤새도록 들려와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1831년 21세 때의 슈만은 라이프치히에 체류하다가 콜레라 공포증 때문에 로마로 도피여행을 가기도 하였다. 여하튼 그의 생은 죽음을 주제로 항상 불안에 짓눌려 있었다. 단, 클라라 슈만의 사랑과 결혼은 자욱한 안개를 걷어내어 주는 강열한 빛과 같았다. 1856년 7월 23일, 엔데니히 병원으로부터 슈만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연락을 받고 클라라가 달려간다. 그러나 위기가 곧 지나갔고 클라라는 슈만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가 7월 27일, 브람스와 함께 2년만에 슈만을 만난다. 그는 그 자리에서 "나의… 나는 알고 있어"라고 불분명한 발음으로 겨우 말하였다. 결국 7월 29일 화요일 오후 4시, 슈만은 죽음과 불안에서 벗어나 조용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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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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