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6 23:55

[한담청론] 김호연재의 법천의 하루

2012-12-25기사 편집 2012-12-24 21:37:30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문희순 배재대 강사 국문학 박사

첨부사진170년대 김호연재 고택일대. 사진=송범기 제공
법천(法泉)은 계족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대전 대덕구 송촌동·중리동·법동 일대를 관통하며 흐르는 큰 시냇물이다. 지금은 도시 개발로 인하여 모두 복개 도로가 되어 실체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개발 이전에는 계족산과 맑은 시내가 어우러져 천혜의 형국을 이룬 삶의 터전이었다. 이 마을을 '법천' 또는 '법천동(법동)'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법천은 시냇물 이름이면서 마을 이름이었던 것이다.

법천의 물줄기 안에 송준길 선생의 삶의 공간과 강학 공간인 동춘당, 은진송씨의 영원한 할머니 유조비 정려각, 은진송씨 대종가 쌍청당, 송규렴가의 제월당과 옥오재가 지척지간에 있다. 김호연재 고택도 동춘당에서 한 시야 안에 위치해 있다.

김호연재는 동춘당의 증손부이다. 홍성 갈산 오두리에서 이곳 법천으로 시집와 살았기 때문에 친정 식구들은 김호연재를 '법천누이(法泉妹)'라고 불렀다. 9남매 중 여덟째였던 법천누이 김호연재는 열아홉에 혼인할 때, 이미 친정아버지 김성달과 어머니 이옥재가 운명한 뒤였다. 그래서인지 친정 오라버니들과 조카들이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법천을 방문하였고, 그 만남마다 시를 흔적으로 남겼다.

김호연재는 자주 법천을 노래했다. 이 법천의 하늘 아래에서 김호연재는 스물세 해를 살다 갔다. 기쁠 때나 슬플 때, 고독에 온 몸을 떨 때, 고향 오두리 바다 물결과 형제를 그릴 때, 자신의 능력이 아까우나 규방 여인이라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귀밑머리 흰 가닥 두어 서넛 비칠 때, 괴로이 잠 못 이룰 때마다 법천의 바람과 달·구름·안개·물소리·소나무·매화·숲·사립문·나비·새소리 등을 친구 삼아 시로써 달랬다. 이런 법천의 벗들이 있었기에 고독을 참아내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조선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호연(浩然)' 두 자를 늘 가슴에 품었던 여성! 진정한 군자의 도를 몸소 실천하였으나, 때로는 시와 술로써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던 김호연재! 김호연재가 호흡하였던 300여 년 전 법천의 하루가 아스라하기만 하다. 다음 시는 김호연재가 읊은 법천의 모습이다.



<법천을 찾아서(訪法泉)>

밤에 종씨와 초당에서 노니니/ 때는 7월 후망의 일일세/ 맑은 바람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니/ 옛 소나무 뜰이 청량함을 보냄이로다/ 홀연 명월이 휘황하게 동에서 솟아나오매/ 비로소 뜰 나무로 들어와 그림자 움직이도다/ 느릿느릿 누에 오르니 네 벽이 빛나고/ 만 리의 맑은 빛 오늘 밤에 열렸구나/ 인생의 모이고 흩어짐이 본디 아득한 것이니/ 이 밤 좋은 만남이 작은 인연은 아닐러라/ 흉금 열어 웃고 말하매 화기 흐드러졌으니/ 다만 초가을 밤 길지 않음을 한하노라(夜遊從氏草堂, 時在七月後望. 淸風能解鬱, 乃是古松立庭送淸凉. 忽然明月煌煌出東邊, 初入庭樹影徘徊. 遲遲上樓四壁光, 萬里淸輝此夜開. 人生聚散本悠悠, 今宵良遇非小緣. 開襟談笑和爛 , 但恨初秋夜未延.)



대전은 명실상부하게 호서유학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호서유학의 중심인물 안에 송준길 선생이 계시다. 송준길가 후손들은 선생의 위상에 걸맞게 가문의 전통과 가격을 300년 넘게 유지해 왔다. 타 성씨로 혼인을 통해 이 집안의 여성이 된 며느리들도 독서와 문화를 통해 집안의 전통을 이었다. 자녀교육, 음식, 복식, 조상섬김, 여가놀이 등 모든 분야의 일상을 문서로 남기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위상과 전통은 주춤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다. 격동의 근대화와 일제시대 등 시대의 아픔을 겪으면서 관심 밖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덕구 송촌에는 위에서 언급하였던 많은 전통문화 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대전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송용억가옥'은 조선의 대표적 여성시인 김호연재가 살았던 고택이다. 이 고택의 문이 굳게 닫힌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무관심과 아픔이다.

김호연재 고택이 우리의 문화와 삶을 인도하는 공간으로 다시 깨어나길 소망한다. 고택의 흐드러진 영산홍처럼, 김호연재의 풍만한 인문학 유산이 우리의 삶을 충만한 감동으로 채울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