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⑦ 쿠트나 호라

 성 바르보라 성당에서 바라본 쿠트나 호라 시내 전경.
성 바르보라 성당에서 바라본 쿠트나 호라 시내 전경.
쿠트나 호라(Kutna Hora)는 프라하에서 남동쪽으로 7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인구라야 고작 2만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이 조그만 도시가 한 때는 프라하 다음으로 번성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쿠트나 호라가 '체코왕국의 보물창고'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은 매장량 때문이었다. 13세기에 대규모 은맥이 발견된 뒤 쿠트나 호라는 거의 200년동안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은광산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쿠트나 호라. 지금도 시내 곳곳에서 그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쿠트나 호라는 해골로 만든 성당으로 유명하다. 엄밀히 말하면 성당이 아니라 올세인츠 공동묘지 교회(The Cemetery Church of All Saints) 지하에 위치한 납골당(Sedlec Ossuary)이다. 1278년 보헤미아 왕의 공식사절로 이스라엘을 방문한 시토 수도회 수도원장이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한 줌의 흙을 갖고 와 이 곳 공동묘지에 뿌렸다. 골고다 흙이 뿌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부 유럽의 부유한 사람들이 이 곳에 묻히기를 원했다. 14세기에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3만명이 이 공동묘지에 묻혔다. 15세기 초반 보헤미아의 후스파(派)가 종교상의 주장을 내걸고 독일황제 겸 보헤미아왕의 군대와 싸운 후스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도 이 곳에서 영면했다.

1400년경에 공동묘지 한 가운데에 고딕양식의 로마가톨릭교회 건립을 추진하면서 엄청난 양의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커다란 지하납골당을 마련하게 된다. 1511년에 시각장애인인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사가 무덤에서 나온 뼈들로 내벽을 장식했다. 1870년부터는 체코의 나무 조각가 프란티섹 린트(Frantisek RINT)가 화려하고 정교한 솜씨로 작품성이 높은 장식물을 만들었다. 장식에 쓰인 뼈들은 모두 소독처리를 한 뒤 회칠을 했다. 내벽을 장식하는 작품에 쓰인 뼈의 개수만 약 4만-7만명 분이나 된다.

사람의 뼈로 납골당 내부를 치장했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성인1인당 입장료 60코루나(우리돈 3600원 정도)를 내고 들어가려는데 직원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B5용지 한 장짜리 가이드 설명서를 내주었다.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도 어설펐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한글과의 만남은 감동이었다. 납골당 설명서를 읽으면서 계단을 내려가자 커다란 돔 모양의 넓은 납골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골이라는 단어가 주는 오싹한 기분은 온데 간데 없고, 어떻게 사람의 뼈로 이렇듯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첼로 모양처럼 생긴 커다란 장식물이 눈길을 끌었다. 사람의 대퇴골, 정강뼈 등으로 만든 슈바르젠베르그(Schwarzenberg) 가문의 문장과 왕관이었다. 최고의 장식품은 인체의 모든 뼈가 포함된 대형 샹들리에다. 가장 규모가 큰 장식품은 납골당 네 귀퉁이에 설치된 피라미드 모양이다. 이 장식물은 해골이 서로 묶이지 않고 쌓여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누구나 공평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조그만 납골당의 한 해 방문객 수가 20만명이나 된단다.

골고다의 성토(聖土) 위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으려던 수 많은 죽은자들의 육신이 작품으로 승화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올바르고 참된 삶이라는 숙제를 던져준 납골당을 나와 프라하로 향하던 중 길을 잘못 들었다. 역시나 내비게이션이 문제였다. 좁은 골목길로만 안내하던 내비게이션이 결국 말썽을 부리고 만 것이다.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른 뒤 차를 돌려 나오는데 저 멀리 언덕위에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 바르보라 성당(Saint Barbara Cathedral)이다. 광부의 수호성인인 성 바르보라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성당은 1388년 프라하의 성비투스 성당을 건설한 페테르 파를레르시가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광이 고갈되면서 쿠트나 호라 도시 전체가 급속도로 쇠락하면서 한 때 건설이 중단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16세기에 완공된 성 바르보라 성당의 외관은 매우 독특하다. 후기 고딕양식의 이 성당은 하늘을 향해 높게 솟구쳐 오른 첨탑의 느낌보다는 옆으로 퍼진 느낌이다. 건물의 양 어깨를 구성하는 아치형 구조를 장식하는 작은 첨탑만이 후기 고딕양식 임을 말해주고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성 바르보라 성당의 모습은 마치 새가 날기 위해서 날개를 펴는 동작을 연상케 한다.

독특한 외관의 성 바르보라 성당을 둘러본 뒤 성당 옆으로 난 길을 걸었다. 체코 성인들의 석상이 길게 늘어선 그 길은 프라하 카를교를 연상케 했다. 쿠트나 호라를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려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카페를 찾았다.

이미 날은 어둑해져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휴대용 담요를 어깨에 걸친 뒤 쿠트나 호라 시내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잠시 눈을 감았다. 900년전 대박의 꿈을 꾸며 전국에서 쿠트나 호라 은광산으로 몰려든 보헤미안 광부들의 작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한경수 기자 hkslka@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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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바르보라 성당은 첨탑 양식의 고딕 스타일로 유명하다.
성 바르보라 성당은 첨탑 양식의 고딕 스타일로 유명하다.
 세들렉 납골당의 대표적인 뼈 작품인 대형 샹들리에. 인체의 모든 뼈가 사용됐다.
세들렉 납골당의 대표적인 뼈 작품인 대형 샹들리에. 인체의 모든 뼈가 사용됐다.

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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