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cuadam@daejonilbo.com

충청인에게 대선은 추억으로 규정될 법하다. 대선은 대통령감을 감별하는 고도의 정치 과정이다. 적잖이 수고와 정신 노동을 감수하고나서야 결심을 굳힌다. 그걸 추억한다는 건 좋았던 경험, 기억, 반대급부 등이 혼합된 감정체계가 작동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럼 충청인보다 더 쾌감을 맛본 지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맞는 지적이다. 같은 추억이라도 충청인의 그것과 영·호남 쪽의 그것은 강도, 농도 등의 요소 면에서 구별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충청인에게 대선이란 한편으론 결핍의 보충이라는 의미가 부각된다. 또는 상실감에 대한 위로의 기회로도 해석할 수 있다. 등가의 한 표를 쥐고 있음에도, 누가 누구를 보듬고 배려한다는 게 어색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같은 감정이입이 충청인들에겐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 부분이 충청도와 대선의 역설일지 모른다. 지역 연고 인사가 대선에 나오면 나오는 대로, 부재하면 부재한 대로 섭섭한 대접을 받지 않은 건 사실이다.

몇 차례의 대선을 복기해보면 충청 표심과 대선 승리와의 일정한 동조화 현상이 확인된다. 15대 대선이 기산점이며, 5년 전 17개 대선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개별 선거마다 조건과 환경, 구도 등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기는 쪽에 베팅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8대 대선 기준으로 충청권 4개 시·도의 총 선거인수는 400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계속 불어난 숫자이긴 하지만 전국 선거인 총수 대비 10%를 점유한다. 그것을 전국 판세를 좌우하는 지렛대로 삼았고 종국엔 승리를 견인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때마다 충청지역엔 구체적인 과실이 떨어졌다. 지역 연고 정당이 참여한 짧은 동거정부에선 행정권력 일부를 할양받음으로써 대리만족감을 느낀 시절이 있고, 이어 참여정부에선 행정도시를 창출해 냈으며 이명박 정부에선 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 입지를 확정지었다. 대선 한번 치르면 어느 진영이 정권을 잡든, 어느 지역 인사가 최고 권좌에 오르든 보상이 주어졌거나 구상권이 관철됐다.

그렇게 충청 표가 강세를 보인 이유가 신기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몇몇 조건과 구도가 그런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게 정답일 듯하다. 흔히 충청도를 '스윙 보터' 지역으로 분류하는데 비밀 열쇠 하나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표심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는 의미의 스윙 보터 심리는 정치적으로 약세 지역에 있는 주민들의 생존전략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표심의 유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론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충청도는 비교적 이념의 경계가 엷고 적실한 명분과 실리를 제시하면 공략 성공률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가령 행정도시, 과학벨트는 사업 자체의 매력과 무게감으로 인해 충청표의 주목도를 높인 측면이 있지만 그걸 전부로 보면 곤란하다. 당시의 시대가치와 조응하고 있다는 점, 입지는 충청이되 창출된 혜택과 과실을 국민적으로 공유될 수 있다는 점 등이 강조돼야 한다.

어제 치러진 초박빙 대선 승부는 이전의 두 차례 대선 때와는 양상이 조금 변화했음이 읽혀진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선에선 충청도의 소구력이 예전만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요컨대 대선판의 프레임이 다른 방식으로 짜여짐으로써 충청표 강세 현상이 변곡점을 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수·진보진영이 총결집한 상황에서 충청표의 쏠림 경향이 많이 완화된 게 특징이다. 특정 진영이 선제적으로 충청표를 구매하려는 의사를 보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주권자로서 유력 후보 중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처지가 된 격이었다.

그동안 대선 주식시장에서 충청표 종목은 블루칩에 비유됐다. 대선 때 목도되는 풍경이었지만 유력 후보들이 큰손 자격으로 매집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사후에 불협화음이 없진 않았다. 당초 계약사항에서 변경(행정도시)이 이뤄지기도 했고, 정책 상품에 대한 독점 공급 약정을 어기는 사례(과학벨트)도 있었다.

그러니 깨달아야 할 때다. 차기 대선부터는 충청표에 그렇게 목을 매달지 않을 것이고, 이길 것 같은 후보 지지를 전제로 대형 국책사업과 맞교환하는 양태도 재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 대선 판에서 충청도는 가능한 카드를 거의 동원하다시피 했다. 아마 대선에서 재미를 봐왔던 추억의 페이지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새 정권의 탄생은 다른 시각에선 기성 정치질서의 혁신을 촉진할 것이다. 그런 뒤 지역 정치 지형을 여하히 보정할 것인가. 미구에 닥칠 본질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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