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목원대 교수 대전교육발전포럼 상임대표

'시대가 인물을 만드느냐, 인물이 시대를 만드느냐.'

이 말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이다. 인간은 역사 발전의 주체로서 시대를 만들고, 찬란한 역사를 이끌어 왔다. 한편으로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대의 특수한 상황이 위대한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역사적 격변기에는 위대한 인물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가 하면, 거꾸로 그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영웅을 배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까닭에 국가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전망할 때는 그 시대를 이끌고 있는 지도층의 사상과 도덕적 수준을 살펴야 한다.

얼마 전 발표된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공기업 청렴도 평가에서 법무부, 검찰청, 경찰청 세 곳이 39개 중앙행정기관 중 최하위 등급인 5등급을 맞았다고 한다. 법무부와 검찰, 경찰은 부정부패를 다스려 나라의 법질서를 바로 세워야 하는 파수꾼들임에도 불구하고, 도박꾼들에게 뒷돈을 대주고 수사 대상자에게서 뇌물이나 받아 챙기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0년에 조사한 부패인식도 조사에서도 일반 국민의 51.6%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부패하다고 응답하였다. 또 다른 기관에서 실시한 '2011년에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부패뉴스는?'이라는 설문에 압도적 다수가 '위장전입, 편법증여,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등 고위공무원 관련 인사청문회'라고 응답하였다. 더욱이 정부 주요 부처의 장을 임명하기 위한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인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예외 없이 이 나라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개최될 때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부패라는 딱지가 붙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 지도층의 현실이다.

1347년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해안도시 칼레가 영국에 항복하게 되었다. 영국은 칼레시민 6명을 칼레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다는 항복 조건을 제시하였다. 칼레시민 어느 누구도 선뜻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죽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이때 상위 지도층 중 한 사람인 외스티슈 드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처하며 나섰다. 그를 이어 나머지 5명이 죽음을 스스로 자청하여 처형되었는데 그들 모두가 고위관료와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죽음으로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였다. 그 덕분에 칼레시가 영국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는 수모를 막을 수 있었다.

영국의 경우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이튼할로의 명문 고등학교나 옥스퍼드 같은 명문 대학을 나온 귀족들이 일반 국민보다 앞장서서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영국 수상을 역임한 이든 수상은 그의 전기에서 그와 동년배에 유능한 정치가가 유난히 적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제1차 세계대전 때 그와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동년배의 수많은 유능한 젊은이들이 맨 앞장서서 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지도층들은 죽음으로 자신들에게 합당한 도의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완수하였다. 그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적 지도층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어떠한가? 우리 지도층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부동산투기, 이권개입과 청탁, 편법증여, 병역기피, 위장전입 등 각종 부정부패의 온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부패하다고 여기겠는가! 참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회적 지도층은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하는 권력이나 명예 또는 부를 갖는다. 이들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과 시행에 간여하기 때문에 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소수의 엘리트인 이들은 사회나 국가의 중요한 인재로서 자신의 신분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이들이 도의적인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신분에 맞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지 여부는 국가 발전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이들을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국난을 맞아서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지도층의 도의적 의무를 다한 수많은 선현들이 있다. 곽재우 장군, 이순신 장군, 윤봉길 의사 등 많은 선현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있었기에 대한의 혼이 오늘도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대통령 선거 열기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누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에 선출되어 국가를 이끌어 갈지 모두가 12월 19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더 이상 대통령 본인이나, 친인척, 주위 사람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국민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최고 지도자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투철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진정으로 따르는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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