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변호사

예상 밖의 난산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처럼 신음하면서, 차디찬 수술대 위에 괴로운 몸을 올려놓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수술실은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제왕절개 수술을 할 때에는 전신마취가 아닌 반신마취를 한다는 당황스러운 사실은 수술대 위에서 알게 되었다.

배를 가르는 느낌, 내 몸속에서 뭔가 묵직한 것을 꺼내 잡아당길 때 허리가 들썩거리는 느낌, 맨 정신으로 아랫도리를 벗고 낯선 사람들에게 수술을 당하고 있는 상황 등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정신이 극도로 명료해졌다.

의사가 '9시 55분'이라고 말하는 순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응애 응애'라는 소리를 내며 울기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수술대에 누워 또렷한 정신으로 모든 상황을 목격하였으니 울고 있는 저 아기가 내 아기일 수밖에 없는데, 저 아기가 내 아기라는 게 믿겨지지 않아 얼떨떨했다. 아기를 낳으면 감격스러워서 펑펑 운다고 하던데, 나는 감격보다는 얼떨떨한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나는 아기 얼굴을 확인한 후 잠이 들었고 입원실로 옮겨져 밤새 통증에 신음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남편이 찍어온 신생아 사진을 보고 '이 아기가 정말 내 아기인가' 또 생각을 했다.

내가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고 확실히 인지하게 되기까지는 약 3-4일 정도 걸렸다. 아기가 처음으로 눈을 뜬 순간 아기에게서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진정으로 엄마가 되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었던 얼떨떨함은 말끔히 사라졌다.

아기를 출산하는 여자의 감정에 대해 단순히 '감동'이나 '감격'으로 함축하여 표현하곤 하지만, 겪어보니 그렇게 단순한 느낌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화장실에서 낳고 버려지는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배 속에서 10달간 품었던 생명을 더러운 화장실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죽게 하는 것, 아기 엄마로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지만 아기를 낳은 직후의 여자의 감정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여자의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기를 낳아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일도 있다. 신생아실에서 조리원 방으로 내 아기를 데려다 주었는데 얼마 지나자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제왕절개를 하는 바람에 출산 후 바로 젖이 나오지 않아 젖을 물릴 수가 없었다.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 된 내 아기는 입을 오므려 젖을 빠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자 '으앙' 하며 울어댔고, 다시 젖을 빠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또 젖이 넘어가지 않자 또 울어댔고,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배고픔에 울어대는 아기를 위해 분유를 훔치는 부모의 심정이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너희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부모 마음을 이해할 거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아기를 키우면서 새록새록 옛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의 영향 때문인지 유독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강조한다. 낳아주신 은혜, 키워주신 은혜…. 아기를 낳아보니 부모님께 감사함이 더욱 가슴에 와 닿기는 하지만 약간은 강요되는 면도 없지 않다.

부모는 아기를 가질지에 대해 선택권이 있지만 아기는 태어날지에 대해 선택권이 없다. 절대적 가난에서는 벗어났지만,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신분상승은 어려운 지금 시대에서 아이가 좌절감을 느끼지 않고 한평생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알다시피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앞으로 내 아이도 살아가는 괴로움을 하나씩 알아갈 것이고 그 과정을 겪으면서 철이 들 것이다. 아이에게 천국을 선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힘들지만 따뜻한 세상을 보여주겠노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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