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임진년 한 해도 저물고 있다. 여름날 무성했던 잎을 벗어던진 앙상한 가지는 찬바람에 떨고, 북쪽으로 떠났던 겨울 철새들은 어느새 돌아와 힘찬 군무를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한가하지만 않다. 지하철 입구에서 바싹 엎드리고 있는 노인의 차가운 손,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가고 있는 어느 청년의 무거운 가방, 연말 거세게 불고 있는 해고의 광풍 속에서 내년이 두려운 아버지의 처진 어깨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 되어 뇌리를 때린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낮다지만 그래도 3%대 성장은 했고, 대미 달러 환율도 열심히 오르고 있어 2012년의 1인당 GDP는 2만5000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살림살이는 날로 나아지지 않음은 무엇 때문일까?

요즘 한창 나오고 있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들이 모두 그대로 실행된다고 해도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모두 몰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대통령을 우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뽑아야 한다.

선거 중반에는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 등 후보마다 크게 다르지 않게 보였던 대선 정책공약들이 종반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차별화되는 것 같다.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오십보백보로 보일 수 있겠지만,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서 정책의 기본방향은 분명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성장 민생주의 국가안위를, 문재인 후보는 복지분배 민주주의 남북평화를 중시하는 프레임으로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인물 중심으로 누가 더 잘생겼는지, 누가 더 덕망이 높을 것인지, 누가 더 리더십이 있을 것인지, 심지어는 누구의 딸, 누구의 비서실장 등으로 과거에 회귀까지 했던 후보 간 구분이 정책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판단된다.

국민들이 우리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국민 선택이 다르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은 더욱 어렵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적 기반을 더 강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 현재 상태에서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을 모색하고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기본적인 문제이다. 정치민주화에 이어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과감하게 재벌개혁을 하는 등 경제체질 개선을 서둘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뒤집고 바꾸기보다는 국민의 삶의 질 개선 자체를 중시하여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은 것인지를 선택하여야 한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을 다시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 핵 보유 반대와 NLL 사수 등 원칙을 중시하는 대북정책을 유지할 것인지는 분명한 국민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대선이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이번 대선의 프레임도 초기의 일자리와 복지, 중반의 경제민주화 중심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 요동치고 있다. 이 와중에 정책 중심이 아닌 인신공격 위주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어 자칫 이번 선거가 혼탁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선거가 정책 중심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TV 토론과 같은 건전한 정책경쟁의 장이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보여주었듯이 유력한 두 후보 중심의 난상토론은 후보의 국정철학과 리더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가 잘되고 있는 유럽 선진국들은 진작부터 보수와 진보를 선거 때마다 적절하게 저울질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여 왔지만, 우리 선거는 아직도 지연 중심의 프레임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야 간 보수와 진보 간 황금비율을 매번 국민이 합리적으로 최종 선택하였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대선은 이러한 황금비율을 그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다수가 국정 반대세력이 되어 국정은 혼란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 결과 당선된 대통령이 내세웠던 정책공약들이 대부분 국회에서 원점의 상태에서 논란만 거듭하다 빛도 못 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여 왔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이 후보의 정책에 투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뽑혔다 해도 그 후보의 정책공약이 선택된 것이 아닌 것이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년을 대통령이 보다 효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선된 후보의 정책도 잘 정선되어 있어야 하겠지만 그대로 집행될 수 있는 정치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러한 환경 조성이 정치쇄신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경이로운 우리 국민의 선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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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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