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문학평론가·충남예총회장

싸이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2012년 '올해의 인물'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총서기 같은 세계 지도자와 동일 반열에 놓인 셈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친 인물을 뽑는 기획 의도로 볼 때 싸이는 이미 세계의 인물이 되고도 남는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투표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한국인에게는 후보 선정만으로도 이미 그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

그동안 '올해의 인물' 시리즈에 등재된 인물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역사의 물꼬를 쥐고 있던 사람이었다. '올해의 인물'을 가리켜 인물로 보는 세계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1927년부터 계속되었다는 '올해의 인물'란에서 한국(인)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노벨상만큼이나 쉽지 않다. 고작해야 1950년에 선정된 '미국의 병사'에서 한국 전쟁과의 연관성을 추리할 수 있을 뿐이다.

'올해의 인물' 후보층에조차 변변히 이름을 올린 한국인은 내 기억에 없다. 아직 한국은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할 만한 이니셔티브를 갖지 못한 탓이다.

싸이에 관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반갑고 자랑스럽다. 한류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해외 음악 시장은 아이돌이 주도했다. 아이돌 중심의 한류 소비층은 연령의 외연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싸이는 세계의 남녀노소를 들썩거리게 할 만큼 소비층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거기다 싸이는 미국 시장에서 앨범도 아직 나오지 않은, 잠재된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가수다. 꿈의 공간이라고 하는 빌보드차트에 7주 연속 2위를 지킨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던가. 싸이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뿐이겠는가. 앞으로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수입도 많은 애국 기업을 능가하고 남는다. 음원과 CF, 영화, DVD, 콘서트, 출판 등 세계시장에서 벌어들일 예상 수입은 말할 것도 없고 특별한 외모에 따른 캐릭터 산업화 가능성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싸이로 인한 한국과 강남의 브랜드 가치는 아직 계산조차 못해 봤다. 군번을 두 개나 가진 딴따라 미운 오리새끼로 희화화되던 싸이가 세계적 아티스트로, 문화산업 기업가로 상전벽해를 이룬 것이다. 자수성가한 싸이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훈장을 수여한 일은 옳았다. 문화훈장뿐 아니라 당국은 매일이라도 업고 다녀야 할 판이다.

당국이 업고 다녀야 할 자수성가한 예술가로 김기덕 감독이 또 있다. 금년에 그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인에게 주는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다 알고 있을 터다. 한국영화가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통틀어 작품상을 받기는 처음 있는 일 아니던가.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은 그는 가방끈이 가장 짧은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한국사람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영화계의 이단아로 취급하여 쳐다보지도 않던 당국이 그런 그에게 얼른 문화훈장을 안겨 줬다. 한국의 자랑스런 영화감독으로 국가가 공인 세례를 베푼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김기덕 감독의 수상은 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가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한다. 말 같잖은 소리다. 수상작인 영화 피에타는 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에 관객 수 60만 명도 채우지 못하고 개봉 4주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수상작이 이 정도니 그간의 김기덕이 보여준 흥행 실패는 구차해서 말할 가치도 없다. 한국영화 누적관객 1억 명 돌파니 한국영화의 흥행 질주니 하는 언어의 잔치 뒤에 미처 꽃봉오리를 피우지도 못한 채 시들어갔던 많은 한국영화의 이름들을 기억하는가. 화려한 외형 뒤의 그늘을 보지 못하고 천만 관객의 현란한 박수부대로 전락한 적은 없었는지 살펴 볼 일이다.

1등만 기억하고 성공만 챙겨주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는 세상은 늘 영웅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웅은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태어나지 않는다. 싸이는 TV에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비주얼로 좌절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군입대 두 번이라는 연예계 초유의 굴욕도 견뎌야 했다. 영웅의 위풍은 좌절과 굴욕의 시간 속에서 영글어가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김기덕 감독의 어록도 새겨둘 만하다. "'네가 뭔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말을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길에서 거리화가로 그림 그릴 때 시나리오를 썼는데, 옆에 화가 분이 한심했는지 '네가 작가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더라. 그 순간 '이 사람이 나한테 선생이구나'를 느꼈다. 또 한 번은 첫 연출작 스태프 중 한 명이 '두 번째 영화 만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처음에는 '두고 보자' 그랬는데, 나중에는 강력한 에너지가 되더라."

'올해의 인물' 후보 선정이나 황금사자상 수상자로서 영웅이 아니라 삶 자체로서 영웅인 싸이와 김기덕. 그들은 문화훈장을 받을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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