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예술기행-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66×55.5㎝, 청동, 1857-1859년)
만종(66×55.5㎝, 청동, 1857-1859년)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는 프랑스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살 때 그림공부를 시작한 그는 1837년 파리로 유학해 들라로슈의 제자가 됐다. 초기에 전원풍경, 누드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주로 유화물감과 크레용, 파스텔을 사용해 초상화를 그렸다. 푸생, 샤르댕, 도미에 등의 영향을 받은 그는 1848년 살롱전(파리에서 해마다 열리던 미술 전람회)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하여 최초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1849년 파리 교외의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농민의 고통과 노동의 신성함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옮겼다. '이삭줍기', '만종' 등의 걸작이 이 시기 작품이다. 1860년부터 명성을 얻은 후 풍경화에 매료되어 고향 풍경을 소재로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1867년 파리 Expo의 밀레 회고전은 대성황을 이루며,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국가 훈장)을 받는다.

밀레는 쿠르베와 더불어 사실(자연)주의 대가로 꼽히며, 코로, 쿠르베 등과 함께 바르비종파를 창시했다. 그의 예술양식은 농민 주제를 영웅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고전적인 이탈리아 양식과 사실주의를 조화롭게 결합한 풍경화, 데생과 동판화에도 많은 걸작품을 남겼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밀레가 그린 농부 그림과 농촌의 삶을 다룬 그림들은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그 당시 농민이 사람으로서 취급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의 발전과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과 특히 빈센트 반 고흐와 카미유 피사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만년에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아 화가로서의 영광을 누렸으나 61살에 숨을 거두었다.

'만종'(L'Angelus, Oil on Canvas, 66x55.5㎝, 1857-1859)은 당시 밀레에게 물감을 살 돈조차 없어 화상이 이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해 탄생한 그림이다. 그는 매사에 감사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린 이유에 대해 옛날에 저녁 종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일손을 멈추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삼종기도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모 영보(수태고지)를 알리는 상황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들은 감자를 캐고, 주변에는 갈퀴와 바구니, 자루, 손수레 같은 농기구가 보인다. 화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대지는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어 자연과 인간의 밀착된 관계를 강조한다.

전경에는 광활하고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에 서서 기도를 올리는 한 쌍의 농부가 있고, 이들의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기념비적이다. 이들의 얼굴은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 없지만, 화면의 빛은 이들의 몸짓과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대지에 몰려드는 저녁노을이 지극히 평화스럽고 조용하다.

부부를 떠받치는 드넓은 평야는 자연의 엄숙한 위세랄까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밀레에게 농촌은 도시와 대비되는 곳이었고, 그는 농부의 모습을 다룬 여러 작품에서 농촌과 자연의 영구함과 순수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살바도르 달리는 작품 속의 인물이 삼종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니라 땅에 묻힌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X-레이 분석을 한 결과 이 작품은 최종 덧칠 전에 관과 비슷한 형태가 그려져 있었으나 이 형태는 불확실해 관의 모양인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현광덕 미술교육가·조각가·대전버드내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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