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 충남대 명예교수

"참 다정다감한 분이었지."

박용래 시인의 30년 지기 벗이자 동료 문인이었던 최원규(79·사진)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는 기자가 박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이렇게 첫마디를 내뱉으며 회상에 잠겼다.

"제가 후배였지요. 박 시인이 50년대에 등단을 하고 내가 60년대에 등단을 했으니까. 잘 알다시피 박 시인과의 추억을 회상하게 되면 술이 먼저 떠오르죠. 그리고 술과 함께 시인이 흘렸던 순수했던 눈물이 생각납니다."

최 교수에 의하면 박 시인은 술을 마시면 항상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마치 옆에 있는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말을 걸기도 해 몇몇 사람들은 박 시인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양반이 박목월 시인과 김소운 시인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술만 들어가면 두 시인의 시를 낭송하고 보고싶다고 이름을 부르다가 결국에는 주르르 눈물을 흘렸지. 또 친 누나인 '홍래' 누이를 많이 그리워했어요. 그 누이가 초산의 산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거든. 그래서 누이가 그립다며 많이 눈물을 흘렸지."

박 시인과의 추억 중 특별하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최 교수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추억보다 아름다운 장면 하나 소개하는 게 괜찮을 것 같네요. 박 시인이 막 결혼을 하고 보문산 아래에 신혼살림을 차렸을 때였죠. 그때도 저와 같이 술을 무척 많이 마셨어요. 항상 1,2차는 기본이고 그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어서 통금 시간이 될 것 같으면 마지막으로 한 잔 더 하자며 저를 신혼집으로 데리고 갔죠. 당시 집 앞에 조그만 상추 밭이 있었어요. 그리고 달빛이 고요하게 내려 앉고 뻐꾸기가 구슬프게 울었죠. 신혼집에서 염치 불구하고 술을 마시다 보면 부인께서 상추 밭에 있는 상추를 따다가 밥상을 차려줬죠. 그러면 술에 취한 박 시인은 얼굴에 고추장을 자꾸 묻히는 거예요. 그러면 부인이 또 조용히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고추장을 닦아줬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던지…"

회상에 잠겨있던 최 교수는 박 시인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향토성 짙은 순수하고 뛰어난 시는 모두 그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죠. 사람과 자연을 참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힘이 센 권력자나 부자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서민적이고 자신과 인간성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려고 했죠. 그리고 자연의 모습도 화려한 풍경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들에 핀 코스모스나 둑길에 핀 민들레와 같은 소박한 자연을 좋아했어요. 이런 소박한 마음이 가장 뛰어난 한국적 서정시인으로 박 시인을 기억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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