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과 교수

한국인처럼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민족은 없다고 한다.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마을, 우리나라라는 말처럼 내가 포함된 집단을 지칭하기도 하고, 우리 아빠, 우리 선생님, 우리 아들처럼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개인을 부를 때도 우리라는 말을 쓴다.

우리라는 말을 통해서 내가 속한 집단과의 동질성에서 비롯된 소속감과 애정이 표현된다. 사실 우리라는 말이 주는 소속감은 살아가는 데 절대로 필요한 심리적 안정을 제공한다. 이러한 우리의식은 집단 내 구성원 간의 연대감을 높이고, 집단의 공통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며, 자존감과 긍지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된다.

그런데 이 '우리' 의식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속한 집단 이외의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로서 지나친 지역주의나 국수주의, 인종주의가 그 예이다. 따지고 보면 축구경기의 훌리건, 내 자식은 절대로 아니라고 강변하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부모, 선거 때마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도 '우리'를 향한 빗나간 사랑을 보여준다. 누구든지 이 좁은 우리 안에 갇히면 더 민감해지고 공격적으로 되며, 반감이나 증오와 같은 비이성적인 감정의 포로가 되기 쉽다. 그는 '짐승을 가두어 두는 곳'이라고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우리'에 갇힌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용납하고 수용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협소한 마음의 '우리'에 말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선거유세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많은 새로운 우리의 울타리가 세워지고 있다. 정치의 성숙도는 그 사회가 두 가지 중 어떤 종류의 '우리'를 추구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것은 출생지나 학연처럼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결정되는 '귀속적 우리'와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 신념체계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획득되는 '성취적 우리'이다. 참된 정치가는 후자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성취적 우리'일지라도 그 우리가 본질적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불이익을 감수하고 과감히 그 우리를 떠난다.

현 정부가 출범하던 5년 전, 국민에게 가장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일은 '고소영 정부'로 표현되던 인사정책이다. 사람들의 눈에는 한 나라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고소영'은 너무나 협소한 '귀속적 우리'로 비쳤기에 반감을 사게 된 원인이 되었다. 전임 대통령들의 임기 중에 레임덕을 불러일으킨 주된 원인도 바로 이 귀속적 우리의 한계에 머물러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중은 지도자가 어느 특정 정파나 계층만을 대변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가 아닌 '저들'의 울타리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이상의 신뢰를 거두어들인다.

지금도 치열하게 진행되는 선거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잘못된 '우리'의 울타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 지도자가 협소하고 배타적인 귀속적 우리의 울타리 안에 갇혀버리면 그 우리 밖의 세상과는 연결이 끊어지기 쉽다.

배타적인 우리 안에서는 우리 밖으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소식이 굴절되고 왜곡되어서 전해진다. 편협한 우리의식도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OO지역 놈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야!', 'OO당에 속한 자들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해'라고 결론을 내린다. 밖으로부터의 소식이 차단되거나 굴절되어 전달되는 배타적인 '우리' 안에서 지도자는 어느덧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 간다. 지도자의 이러한 태도는 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넬슨 만델라는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는 인종차별에 저항하여 옥살이를 하다가 27년 만에 석방되어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법을 폐지하고, 마침내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되었다. 그때 그는 인종차별의 원인이 되었던 잘못된 '우리'의 협소한 울타리에 머물러 과거청산이나 복수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우리'를 위하여 용서와 화해를 말하였다. 킬링필드를 초래한 크메르루주의 폴 포트는 그 대척점에 서 있다. 가장 선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그는 히틀러 이후 최악의 대학살을 저질렀다.

'우리'의 시작은 서로 닮은 것을 찾는 것에서부터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다른 것을 발견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우리' 관계의 다음 단계가 결정되며, 더 큰 '우리'로의 확장이 일어난다. 우리나라를 이끌 차기 지도자에게 그 '우리'의 확장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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