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daejonilbo.com

☞소년은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다. 학교 가기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썩 내켜하지 않았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로빈슨 크루소에 매료될 정도로 자기 밖의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혼자 있음을 즐겼다. 유일한 친구는 그림 그리기였다. 혼자 할 수 있는 거 또 잘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잦은 병치레, 가난 때문에 엄마 품을 떠나 할머니 손에 맡겨졌던 아픈 기억들이 세상과 단절이란 철옹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리기를 즐겼듯이 소년의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일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명처럼 주어진 일이라고 믿었다. 화가 말고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40년 전 소년이 바로 현존 '세계 100대 화가', '중견 작가 중 그림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가'인 김동유다.

☞ 소년의 지난한 생활은 청소년기, 대학시절, 무명화가 시절까지 계속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면서 가난은 일상이 됐다. 장남의 장래를 걱정한 아버지는 그림 그리는 것을 극구 반대해 갈등의 연속이었다. 미대 진학을 앞두고 감정이 폭발해 아버지와 10년간 의절을 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대학을 다니고, 한때는 작업실이 없어 논산의 축사를 얻어 작업을 하기도 했다. 방·화장실·부엌의 구분도 없었다. 먹던 밥그릇과 벗어 놓은 신발에 뱀이 똬리를 틀 정도로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불편과 가난이 일상인 양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뎠다. 할 수 있는 게 그림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그림은 존재의 이유였고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죽도록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루저가 아니다'는 다짐을 하면서 고통의 과정을 즐겼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그림꽃 눈물밥'(비채)에서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 2005년 11월 마침내 마이너리티의 유쾌한 반란은 시작됐다. 서울의 한 화랑이 김동유의 작업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반 고흐 '이중 그림'을 데뷔시켜 8800만 원에 낙찰이 된 것이다. 그후 매년 크리스티 경매에 참여했으며 2006년에는 현존 한국 화가 중 최고액을 기록해 세계적인 스타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픽셀 모자이크 기법으로 팝 아트의 미학을 자신의 예술철학으로 흡수한 것은 물론 대중예술로서 팝 아트에 깊이와 상상력을 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및 런던올림픽 기념전에 앤디 워홀과 게르하르트 리히더 등 대가들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도전자에서 지구촌 미술계가 인정하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는 지방대학 출신의 아웃사이더 화가다. 서울 중심의 폐쇄적인 주류 화단에 인맥도 전혀 없었다. 중앙 화단의 주목을 받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인맥을 만들려고 나서지도 그 언저리를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시골에 묻혀 외골수로 창작의 열정만 불태웠다. 그래서 화단에서는 그의 성공을 돌연변이라고 한다.

그의 성공 뒤에는 수줍음 많고 외톨이에 상처투성이인 소년이 있었다. 고통과 상처를 아픔으로만 받아들인 게 아니라 예술의 자양분으로 삼은 지혜와 영특함을 지닌 소년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묘미는 반전이다. 스릴과 긴장감이 더해진 반전의 감동은 오래 기억된다. 반전이 없으면 밋밋하고 무미건조하다. 흥미가 없어 보는 사람은 금세 싫증을 느낀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한번 강자는 영원한 강자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처음과 끝이 같은 인생이라면 꿈도 없을 것이다. 인생은 반전이 있어 누구에게나 도전의 의욕을 북돋운다. 스타 화가 김동유도 아웃사이더를 숙명인 양 받아들인 채 반전을 꿈꾸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과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수능에 이어 수시와 정시 열풍이 온 나라에 번지고 있다. 수능 점수가 잘 나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도 있고, 시험을 잘못 치러 원서 쓰기를 포기한 채 실망과 정신적인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에 일탈을 꿈꾸거나 자살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살이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반전을 위한 도전을 길을 찾는 것이 더 건강한 생각이고 값진 삶이다.

주위에 수능점수 때문에 어깨가 축 처진 수험생이 있다면 점수가 미래를 결정짓는 온전한 '열쇠'가 될 수 없다는 점과 고통과 절망도 자기 삶으로 끌어안고 유쾌하고 통쾌한 반란을 꿈꿔보라는 얘기를 해주면 어떨까. 기회는 언제든지 다시 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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