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의 최대 난제로 인식돼 온 참여자간 `공정한 공사비 분배`와 `수평적 협력관계 형성`을 위해 원도급자가 제값을 받아 시공하도록 하고, 하도급자·장비업자도 정당한 대가를 얻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지난달 열린 `건설산업 공생발전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자체 평가다. 공생발전위는 국토해양부가 건설산업 참여 주체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생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발족한 단체다. 이번 자체 평가만 들어보면 원도급자와 하도급자는 수평적인 관계에 놓여 상생발전을 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건설현장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원-하도급자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금 체불`이라는 업계의 고질병이 지속 돼 문을 닫은 업체가 매년 늘고 있고 있으며, 부당 사례 신고건수도 줄지 않고 있다. 지역 건설업계 원-하도급 관계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원도급 횡포에 문 닫는 하도급업체들=대한전문건설협회 대전시·충남도회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 지역의 전문건설업체 수는 대전 852곳, 충남 2400 등 총 3252곳이다. 이 중 최근 1년간 경영난에 면허를 자진반납 해 폐업처분 된 업체는 217곳(대전 67·충남 150)이며, 지자체가 부적격 업체에 대한 행정처분을 내려 등록말소 된 업체 수는 65곳(대전 20·충남 45)이다.

하도급업체들이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하도급 감액 등 원도급자의 부당행위에서 촉발됐다는 게 전문건설업계의 주장이다.

대전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현 정부는 대중소기업간의 상생협력을 공정한 사회의 실천과제로 삼고 있지만 올해 들어 건설경기 지수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공공수주와 민간건축 미분양 여파로 전반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영세업체인 하도급업체의 사정은 더욱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건설업 공동생존을 위한 상생협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은 원도급 업체의 부당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전문건설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건의한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서 발급 실태`에 따르면 민간공사 수급사업자 40.9%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교부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원도급자들이 아직도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아, 경영난이 심화 돼 대금 지급상 문제가 발생될 경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원도급자들은 국가나 지자체 등 공공발주자로부터 공사대금을 현금으로 받고 하도급자에게는 장기어음 등으로 지급하거나 설계변경이나 물가연동에 따른 증액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원-하도급 갈등 조장하는 최저가낙찰제="공사를 해도 남는 게 없다. 실적 쌓기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 공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

건설경기 침체기를 겪고 있는 종합건설업체들의 푸념이다. 이 같은 현상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최저가낙찰제`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최저가 낙찰제는 300억원 이상의 공공 건설공사에 적용되는 제도로, 가장 낮은 투찰 가격를 제출한 업체부터 적정성 심사를 거쳐 수주여부를 판가름 짓게 된다.

국회 국토해양위 강석호(새누리당) 위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2010년 3년간 LH가 최저가낙찰제로 발주한 공사의 낙찰률은 2008년 124건(73.7%)에서 2009년 82건(69.9%), 2010년 29건(69.4%)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출혈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건설업체의 마진이 줄게 되면 하도급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최저가낙찰제가 `원-하도급` 갈등을 부채질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LH가 발주하는 최저가낙찰제 공사는 실질적으로 마진이 남지 않는 공사"라며 "적자를 보지 않으려면 현장인력과 장비를 돌려 손해를 최소화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적 쌓기용으로 공사에 참여한 원도급이 하도급 대금을 줄이려 하는 점도 문제다. 전문건설업계 관계자는 "자재·장비·인테리어업 등은 아파트 시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맞고 있음에도 공사비가 적게 책정되면 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일감 가뭄을 겪고 있는 전문건설업체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사에 참여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공동생존 갈 길 먼가=정부는 현재 건설업 선진화를 도모하기 위해 건설업에 참여하는 주체간의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파트너 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원-하도급자간의 협력관계를 통한 건설업계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하도급업체들은 이 같은 정부의 제안을 구체적인 대책이 없는 탁상행적이라는 질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말로만 상생을 외치지 말고 업체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원-하도급 업체간 공생발전을 이룰 수 있는 대안 중 `주계약자 공급도급제`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계약자 공급도급제란 추정가격 2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인 종합공사에 대해 주계약자인 종합건설업체는 전체 공사의 종합적인 계획·관리·조정 역할을 맡고, 부계약자인 전문건설업체는 당해 공사를 직접 시공토록 공동수급체를 구성해 입찰 및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문제는 지자체의 소극적인 모습이다. 주계약자 공급도급제는 강제 사항이 아닌 권장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지자체 단체장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전의 경우 주계약자 공급도급제가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대전의 주계약자 공급도급제를 통해 발주 된 물량은 11건이며, 올해도 10월 기준 8건에 그치고 있다. 반면 부산에선 지난해 50여 건의 주계약자 공급도급제 물량이 발주됐으며, 서울시는 주계약자 공급도급제를 적극 활용하라는 공문을 지속적으로 발송하고 있으며, 시행하지 못할 경우엔 사유를 제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강대묵 기자 mugi1000@daejonilbo.com

9월 기준 임금 체불액 10억 건설경기 악화속 부도 속출

■ 대전 하도급업체 피해

#1. 대전지역 원사업자 A는 2011년 1월 수급사업자 B에게 `빌라 신축공사` 중 토목공사를 위탁하고 목적물을 인수했으나, 인수일로부터 60일을 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도급대금 1억4447만원을 지급하지 않아 시정명령 처분을 받았다.

#2. 원도급 A사는 2009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8개 수급사업자에게 건설관련 조성공사를 위탁하고, 선급금을 지급하면서 15일 초과분에 대한 지연이자 2781만원을 지급하지 않아 시정명령 결정이 내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 대전사무소를 통해 접수된 원-하도급자간의 피해 사례다. 최근 3년간 사무소에 접수된 대-중소기업간 피해건수는 총 178건이다. 이중 건설관련 업종이 121건으로 전체 67.9%를 차지했다. 이는 원-하도급간의 갈등사례가 업계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업계 속내를 들여다보면 피해규모는 확대된다.

전국건설노동조합 대전지부에 따르면 9월 기준 지역 건설현장의 임금 체불액은 10억원에 달한다. 임금 체불의 가장 큰 요인은 하도급업체의 부도라는 것이 건설노조측의 주장이다.

건설노조 대전지부 관계자는 "최근 건설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는 하도급업체들이 속출하는 분위기"라며 "문제는 원청에서 하도급업체에 지급한 노임단가가 아직 근로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하도급 업체들은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 하도급 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말로만 건설업계의 상생협력을 외치지만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지자체의 조례나 규정이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는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대묵 기자

원도급자 우월적 지위 개선 공사비 적기지급 강화 시급

■ 건설업 공생 과제

원-하도급자간의 공생발전을 위해선 대금적기 지급, 원도급자의 우월적 지위 개선 등을 필요로 한다.

건설산업 공생발전위원회의 `원-하도급자 공생발전 방안` 추진과제에 따르면 하도급 대금 적기지급을 강화하라고 명시 돼 있다. 세부 실천 방안으로는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발급률 제고, 하도급대금지급보증 지급요건 완화 및 심사기간 단축, 하도급대금 직불 확대, 보증기관의 보증서 발급·변경사항 하도급자 직접 통보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원도급자의 우월적인 지위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여겨진다. 국토해양부는 부당 특약 제재유형 확대를 하기 위해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을 개정 중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도급자와 하도급자는 각자가 맡은 공정만 다를 뿐 상하관계가 아니다"며 "업계에서 원도급자가 우월적인 자리에 놓여 있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의 `건설산업정보시스템(KISCON)`을 통한 하도급 운영실태 점검도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국토부는 하도급 공사현황 파악을 위해 KISCON 입력률 제고를 권하고 있다. 지난 6월 입력서식 간소화방안을 마련하고 현재 건산법 시행규칙을 개정 중이다.

산재은폐예방도 필요하다. 환산재해율에 포함되는 산재범위를 조정하고, 환산재해율 가점을 축소, 산재예방노력에 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발주자와 원도급자의 관계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우선 적정공사비 확보를 위한 시스템 개선이다. 표준품셈, 실적공사비 산정시 민간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소규모 공사 반영을 현실화 해야 한다. 또한 최저가 낙찰제 보완방안을 검토해야 하며, 발주기관의 공사비 삭감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공기지연에 따른 간접비 반영도 추진과제다. 강대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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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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