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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박근혜는 한국의 메가와티?

2012-11-12기사 편집 2012-11-11 20: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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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숙 배재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박근혜 후보가 갑자기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들고 나오면서 정치권이 때 아닌 '여성'논쟁이다. 혹자는 박근혜 후보는 '여성'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혹자는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이 그나마 대중적 관심을 받는 것 같아 반갑기조차 하다.

세계적으로 실제로 수십 명의 여성 정치인들이 국가수반의 자리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 유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큰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 번째 집단은 유럽 선진민주주의국가들에서의 여성의 약진이다. 아일랜드의 메리 로빈슨 대통령,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프랑스 사회당의 유력한 대통령후보 세골렌느 로와얄, 영국의 대처 총리 등 상당수의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가 그들이다. 이 유럽 국가들은 수백 년에 걸친 치열한 여성운동의 역사와 상당한 사회·정치·경제적 성 평등 수준을 자랑하는 국가들이다. 의회의 여성의원 비율이 최소 15%에서 30%에 이르며 행정관리직과 전문기술직의 여성비율이 30-50%에 달하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들에서 여성대통령의 탄생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런데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가 탄생한 또 다른 일련의 국가들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 대통령, 파나마의 미레야 모스코소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 등이 이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사실상 상당히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여성의 정치 대표성 역시 지극히 낮은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 지역 국가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최고의 권좌에 올랐는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여성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이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거나 딸로서 사실상 대통령직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이사벨 페론 대통령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이었으며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네스토르 키르치너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미레야 모스코소 대통령은 아르눌포 아리아스 전 대통령의 부인이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전설적인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장녀로 태어났다. 이들 여성 리더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독자적인 정치 경력을 통하여 유력 후보로 등장하였기보다는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에 힘입어 대중적 지지를 획득했다는 데 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20여 년을 전업주부로 지냈다. 그럼에도 아버지였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정치적 승계자로서 급속히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한 지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메가와티)는 수카르노이고 수카르노는 인민을 위해 투쟁했다."

물론 이들이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에 힘입어 등극했다고 해서 이들의 정치적 역량을 완전히 폄하할 수는 없다. 여성의 정계 진출이 지극히 힘든 후진적 정치문화 속에서 후광은 어쩌면 이들이 그나마 정계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 모른다. 후진적 정치문화 속에서 후광을 이용했다고 해서 그들을 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회를 통하여 정치역량을 강화하고 독자적 정치세력을 확보하기도 한다. 일례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재임 시절의 잡음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2011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이들 여성 리더들의 등장을 굳이 여성 지위의 향상과 사회적 성 평등의 결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의 여성 리더들은 가부장적 질서에 도전했던 여성 리더가 아니라 오히려 가부장적 질서 덕분에 탄생한 여성 리더들이다. 따라서 이들 여성 지도자들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정치적 성 평등을 추진하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강화하리라는 보장 역시 없다.

한국의 박근혜 후보는 어디에 속할까? 2005년 UN의 여성권한척도에 따르면 한국은 80개국 중 59위이다. 여성의 정치경제적 참여와 권리에 초점을 두고 있는 세계경제포럼의 GGI(Gender Gap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무려 107등이다. 여성의원의 비율은 할당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OECD 최하위 수준이며 고위관료직 여성비율 역시 지극히 낮다.

이러한 한국의 낮은 여성정치 대표성, 가부장적 정치문화,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 박근혜 후보의 전반적인 선거전략과 정치적 행보를 생각하면 박근혜 후보는 영락없이 두 번째 유형에 속한다. 여성주의에 공감한다고 보기는 힘든 중장년 남성들이 박근혜 후보를 흠모하고 찬양하는 것은 그녀가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박정희 대통령의 계승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 전략은 역시 좀 생뚱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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