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 한필원 지음·휴머니스트·384쪽·1만3000원

7년 동안 주말이면 어느 도시의 골목을 걸었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만나는 한옥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 놀던 골목길을 떠올린다.

대전이 생활터전이고 건축인문학자인 저자 한필원씨는 한국의 오래된 도시 9곳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디자인했다.

외래 풍경을 안고 있는 오래된 포구 도시 강경을 비롯해 충주, 밀양, 통영, 안동, 춘천, 안성, 전주, 나주 이야기를 저자가 직접 스케치한 도시 풍경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개별 건축물이 아닌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건축으로 사고하며 도시의 색깔과 휴머니즘, 그리고 오래된 지혜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 나간 것이 특징이다. 또 오래된 골목길을 산보하듯 느리게 걷다보면 도시에 깃든 삶의 맥락을 짚어볼 수도 있다.

'해마다 11월 김장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버스가 강경으로 몰려와 가게 앞은 물론 도시의 골목들을 메운다.…(중략)… 관광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젓갈만 볼 뿐 도시의 빛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쇼핑객이다.'(230쪽)

젓갈로 유명한 강경의 모습이다. 저자는 이 곳에서 단순 쇼핑객에 그칠 그들을 젓갈 냄새를 맡으며 구경할 만한 역사 도시, '강의 풍경' 속으로 끌어내자는 과제를 던져줬다.

저자에게 골목골목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공간에 서사와 '집단 기억의 퇴적층'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도시,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텍스트라 여기고 아홉 도시를 꼼꼼히 읽고 나름의 해석을 펼쳐나갔다.

7년 동안 답사했는데 왜 아홉 도시를 선정한 걸까, 궁금했다. 저자는 "역사가 긴 도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심부를 지닌 도시, 현대도시로서 매력과 잠재력이 큰 도시 등 3가지를 충족한 반짝이는 별과 같은 지방 9개 도시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도시 답사 노하우 중 하나는 자전거다. 도심부가 작은 오래된 도시를 답사할 때는 걸어도 좋지만 자전거로 전체를 조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전거로 답사한 충주에서는 예와 무라는 두 개의 문화 바퀴를 활용해 도시를 살펴본 것이 흥미롭다.

조선후기 장시가 발달하면서 상업도시 명성을 날린 안성은 휴머니즘이 있는 도시로, 밀양은 곡선의 강과 직선의 중앙로가 교차하는 도시라고 해석했다.

'통영은 오감을 자극하는 도시다. 통영의 랜드마크인 세병관 뒤로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대향이 그랬듯 이상향을 그리고 바닷가를 거닐며 백석이 그랬듯 조개 울음도 듣고 김 냄새나는 비를 맞을 수도 있다. 세병관 마룻바닥에 앉아 부드럽고 따스한 나무의 촉각을 느끼고 부둣가로 가서 맛있는 해산물도 맛볼 수 있다.'(82쪽). 하지만 이런 오감의 도시를 자동차가 위협한다며 자동차를 배제하고 조금 느린 도시, 조금 불편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통영의 살길이라고 조언한다. 특히 이 책은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막다른 골목길을 도시 공간의 특징으로 살펴봤다. 불규칙한 면의 구성 덕분에 도시를 더욱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공간으로 만들지만 반면 편안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탓에 '양반의 도시' 안동의 막다른 골목길은 인간적인 척도를 가지고 있어 도시의 휴머니즘을 찾을 수 있다.

도시 문제의 해법은 현장에 있다는 저자는 오래된 도시를 읽는 다양한 방법도 소개한다. 도시와 연관된 인물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있는 장소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라고 권한다.

춘천에 가면 화가 박수근과 조각가 권진규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통영에서는 이중섭과 '김약국의 딸들'과 같은 문화예술 작품을 미리보고 찾아간다면 더없이 풍부한 도시답사가 될 것이라고 소소하고 구체적인 제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임은수 기자 limes@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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