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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광장] 범죄 피해자와 사회적 카타르시스

2012-11-02기사 편집 2012-11-01 21: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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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 사회부장 yong@daejonilbo.com

영화 속 풍경은 참혹하고 고통스럽다. 불안전한 사회의 위태로운 현실을 들여다 보노라면 착잡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영화는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최근 개봉되는 영화들의 공통점이다. '돈 크라이 마미', '공정사회', '나쁜 피'는 성폭행 범죄가 소재다. 가공된 소재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일상처럼 반복되는 성폭행 범죄를 다룬다. 단지 범죄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범죄 피해자의 사적 복수라는 일치된 결말을 보여 준다.

돈 크라이 마미는 고교생 딸이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자 딸이 목숨을 끊게 되고 엄마가 복수에 나서는 과정을 그렸다. 공정사회 역시 경찰의 부실 수사로 10살 딸의 성폭행범을 찾지 못하자 엄마가 찾아내 처벌에 나서는 줄거리다.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을 사적 복수로 해결하는 점에서 두 영화는 닮은 꼴이다. 나쁜 피는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가 20년 만에 자신의 생부를 찾아가 복수하는, 보다 극단적인 스토리를 담았다. 분노와 울분, 불안이 짙게 내재된 영화는 사적 복수를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사적 복수라는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대중적 공감대가 확장될 수 있는 것은 취약한 사회적 시스템을 질타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라면 참혹한 고통을 복수로 마감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현실은 카타르시스가 없다. 우리나라의 연간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30만 건을 헤아린다. 피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더하면 해마다 100만 명이 이상이 강력 범죄의 고통에서 온전히 치유받지 못하고 있다. 범인을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이고 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준에 납득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검거와 처벌이 이뤄졌다고 해도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있는 상처와 고통은 시간이 흘러도 대못처럼 박혀 뽑히질 않는다.

강력범죄 피해자에게는 정신적 후유증 뿐만 아니라 경제적 피해가 동반된다. 대부분 강력 범죄 피해자는 경제활동을 하다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10명 중 6명 꼴은 저소득층이고 아이를 두고 있는 기혼자이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저소득층 가장이 범죄 피해로 생계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가족까지 2차 피해를 입게 된다.

최근 지역에서 한 남성이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보험 영업을 하는 남성은 늦은 밤 귀가 길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한 뒤 뇌출혈 등의 중상을 입게 됐다, 병원 진단 결과,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 아내와 두 자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이유도 없는 폭행으로 가족이 생계의 위협에 놓이게 된 것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묻지마 범죄가 선량하고 단란했던 가정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 가를 가늠케 하는 사례다.

수 년 전에는 대전에서 두 자매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범인은 강도살인죄로 구속됐다. 자매의 유족은 생계 능력이 없는 홀아버지. 두 딸을 한꺼번에 잃은 충격과 슬픔은 상상하기조차 버거운 무게일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계 유지가 어려운 상황. 두 딸을 먼저 떠난 보낸 기막힌 현실에서 그 정신적 고통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이라도 해봤겠는가.

강력범죄 피해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강력 범죄가 발생하고 있고 범죄도 점점 흉폭화되고 있다. 범죄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짊어지는데다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지는 만큼 일반적인 취약계층보다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아직까지 취약하다. 범죄피해자구조법에 의해 유족·장해 구조금이 지원되는 대상은 1%대에 불과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큰 특징은 복지 확대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서 복지 예산을 증액하고 수혜 대상을 늘리는데 부단히 애를 쓴다. 그 이면에는 복지 수혜의 중복과 선심성 지원이 적지 않고 그런데도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복지 포퓰리즘 논란이 따라 붙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에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데다 지원 규모도 미흡하기만 하다. 각 자치단체도 범죄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법령이 있지만 실제로 지원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 확대는 단지 경제적 지원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확장될 수록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 단지 영화에서의 복수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풍경도 점점 사라지 않을까. 범죄 피해자에게는 범인에 대한 복수보다도 '사회적 카타르시스'가 더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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