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순 배재대 강사 국문학 박사

16세기 여성시인 김임벽당(1492-1549)은 부여에서 태어나 서천 비인면 남당리 기계유씨 유여주(兪汝舟)에게 시집갔다. 할아버지로부터 시(詩)·문장(文章)·글씨를 익혔고, 수예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시아버지 유기창(1437-1514)은 중종반정 후 유배지 거제도에서 풀려나 병조참의 및 동지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비인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켰다. 비인 청절사에 배향되었다.

유여주는 무인년(1518)에 현량과에 추천되어 이름이 높았으나, 기묘사화(1519) 때 고향 비인에 은거하며 배꽃·복숭아꽃과 더불어 살았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도화동(桃花洞)으로 불렸다고 한다. 물 고인 곳에 연못을 파 못 가운데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선취정(仙醉亭)'과 '임벽당(林碧堂)'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현재 비인면 담당리에는 임벽당 부부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보호수로 남아 그 위용을 더하고 있다.

김임벽당이 남긴 한시 7수는 '임벽당칠수고'라는 시집으로 묶였다. '임벽당칠수고'가 묶여지기까지는 많은 사연과 정성이 들어 있다. 먼저, 서장관 김두명이라는 사람이 1683년(숙종 9) 중국사행을 다녀오면서 명나라 전겸익이 엮은 '열조시집'을 가져와 김임벽당의 7대 손 유세기(兪世基)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 임벽당의 시 두 수가 수록되는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었다. 이 경이로운 사실을 후손 유세기가 발견하고 '임벽당칠수고'를 엮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임벽당칠수고'에 실린 임벽당의 시 7수 가운데 '제임벽당' 2수는 임벽당이 베개에 자필로 수놓은 시이다. 그리고 허균이 편집한 시선집 '국조시산'에 '증질자'·'증별종손' 2수, 명나라 전겸익의 '열조시집'에 '별증'·'빈녀음'·'고객사' 3수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 7수의 시를 수습하여 후손 유세기가 각 명사에게 서문과 발문을 청하여 시집을 편집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얇은 시집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시집의 서문은 유세기와 남구만(1693년 6월)이, 발문은 조지겸·윤증(1686년 정월)·조인수·한태동(1686년 3월)·남용익(1691년 봄) 등이 썼다.

'임벽당에 제하여' 1

작은 마을 그윽이 깊은 한 구석

자연 몹시 사랑하니 근심 잊을 만하네.

인간사 옳고 그름 얽매이지 아니하고

꽃 피면 봄, 잎 지면 가을인 줄 안다지.

'임벽당에 제하여' 2

숲속에 의지하여 속세의 번뇌 끊고

다만 그윽이 참 성품 기른다네.

한가로운 베개머리 봄날의 졸음

함 없는 그 모습 태초의 백성 같구나.

이 시에 대하여 남구만(南九萬)은 "이 시를 암송하면 성률이 화평하고, 음미하면 흥취가 그윽하고 한가로워 '시경' 이남(二南)의 유풍을 계승하였다"고 평하였다. 그리고 "세속을 벗어난 아취와 자득의 즐거움, 가난하나 검약하여 화려함을 그리워하지 않았다"며 도연명과 임포의 작품들과 견줄 만하다고 극찬하였다.

이 시 두 수는 임벽당이 베개 양쪽 머리에 자신의 필체로 수를 놓은 것인데, 남구만이 서를 쓸 당시(1693년)까지 약 160여 년간 후손들이 보관해 내려왔다고 한다. 후손들의 임벽당에 대한 존숭을 엿볼 수 있다. 만약 임벽당의 이 베개가 현재까지 전해졌다면, 세계 문화유산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산이 되었을 것이다. 여성 자신이 시를 창작하고, 그 시를 베개에 직접 수를 놓아 애용·완상한 흥취는 여성에게서만이 발견할 수 있는 황홀한 멋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충청도 기호학파의 자장 안에서 조선 전기부터 남성 못지않게 여성들도 크게 활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여성들의 귀중한 문학유산이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전해지지 못하고, 각종 문헌에 단편적으로만 전해지는 점이 크게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시집 '임벽당칠수고'! 이 작은 시집은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먼저 후손들의 선조에 대한 존숭하는 마음이다. 선대 할머니의 베개를 160여 년 넘게 소장하여 내려왔다는 점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 자신이 자신의 삶과 일상·문학을 접목시켜 베개에 수를 놓아 완상한 격조 높은 문화정신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소중한 내면적 가치를 멀리한 채, 그 무엇인가를 향해 획일화된 가치를 추구하며 쫓기듯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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