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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그놈의 술과 신의 물방울

2012-10-25기사 편집 2012-10-24 22: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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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 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술은 사람을 철학가로도 만들고, 달변가로도 만든다. 어쩌면 그 속에 주신이 강림하시는지도 모른다. 강림하시는 주신 중에는 사람을 떡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론 동물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은 주로 그 동물을 멍멍이라고 부른다. 대단한 능력을 지니신 분임에는 틀림없다. 남편 몸에 강림하시는 주신은 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남편을 재우신다. 장소가 어디든 누구랑 있건 그건 그다지 상관하시지 않으신다. 그리곤 다음 날 남편이 부끄러워할까 봐 떠나시기 전에 기억을 싹~ 지우고 가신다. 매너 있게.

그래서 남편은 때론 아파트 놀이터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주차장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남들은 이 정도면 그 주신은 아주 점잖은 분이란다. 참 가지가지 에피소드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더라. 이 때문에 주로 '술'이란 단어 앞에는 '그놈의'라는 말이 붙고, 뒤에는 '웬수'라는 말이 붙나 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의 가장 큰 원인도 술이라고 하고, 살인사건 10건 중 4건은 음주범죄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한다. 가정폭력 가해자의 60%가 술을 마신 상태였고 또 살인, 강도, 강간 등 5대 강력 범죄의 30%가 술 마신 사람이 저지른 범죄였다.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나 아버지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들도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이쯤 되면 술이라는 것이 음주 후 실수처럼 웃으면서 이야기할 차원은 넘어서는 듯하다.

얼마 전 술을 마시고 심신이 미약해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항소한 성범죄자에게 법원이 오히려 늘어난 형량을 선고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니, 그게 새로운 소식, 뉴스? 그럼 지금까지는…?

나영이 사건을 포함해서 아동 성폭행범 대부분이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고, 자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 술이 그런 것이라고, 기억도 나지 않고, 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했단다. '음주 후 심신 미약'은 변호사들의 '주무기'였고, 그들은 정상참작 대상으로 감형되었다고 한다. 술에 관대한 한국 문화가 미국에서는 200년짜리 형을 12년짜리로 너그러이 깎아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아이들 말로 '허~얼'이다.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를 풍자해 "술 먹어서 기억 안 난다고 하면 정상참작 해준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장난 하냐?"라고 했고, "너 높은 분들한테 혼나는 거 아냐?"라는 얘기에 "괜찮아. 술 마셨다고 하면 돼"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문제 많고 모든 사건 사고의 중심에 있는 '술'이지만, 한두 잔의 술은 긴장을 풀어주고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켜 서로의 마음을 열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일이 있어 잔치를 할 때도, 슬픈 일이 있어 위로가 필요할 때도, 가끔씩 용기가 필요할 때도 술과 함께 해 왔다. 술은 사업을 성사시키기도 하고 쌓였던 앙금을 풀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천사의 눈물'이라고도 하고, 신이 인간들에게 내린 축복, '신의 물방울'이라고도 하나 보다.

이런 이야기도 있더라. 신의 선물로 포도주를 받은 인간들이 너무나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악마는 포도밭에 양, 새, 원숭이, 사자, 돼지피를 거름으로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 잔을 마시면 양처럼 온순해지지만, 둘째 잔을 마시면 새가 지저귀듯 말이 많아지고, 셋째 잔을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하여 주변이 소란스럽게 되고, 넷째 잔을 마시면 사자처럼 으르릉대며 사나워지는데, 다섯 째 잔을 마시면 돼지처럼 추잡해진다. '잘 마시면 약, 잘못 마시면 독'이라고도 하는 술의 양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신은 물을 만들었고, 사람은 술을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술이 있고, 술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인다. 그 때문일까. 나는 술보다는 술자리가 좋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자리에, 잘 어울리는 술 한잔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여름철 살얼음 낀 유리잔에 시원한 맥주 한잔, 파전에 막걸리 한잔,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잔, 얼큰한 매운탕과 함께 소주 한잔, 그리고 분위기 좋은 야외 테이블에서의 칵테일 한잔까지. 하지만 그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한잔'이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엔 술이 술을 마시고, 그 다음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하는데, 술이 내 돈으로 술을 마시기 전에 슬슬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천천히 마시고, 일찍 끝내서 내 간과 내 알코올 분해효소에게 처리할 시간을 주자. 내 뇌가 문 닫고 조기 퇴근하기 전에. 이상한 주신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꼭 명심하자. 가끔 주신님께서는 지름신님을 함께 모셔 와서 다음 날 기억은 가져가시고 영수증만 남기시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참, 맥주에 소주, 양주를 섞는 폭탄주는 장에서 알코올이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도수로 재탄생되고, 그래서 폭탄주가 더 빨리, 더 많이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폭탄은 그게 뭐건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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