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5 23:55

[라병배 칼럼] 선진당의 새누리당 '입적'

2012-10-25기사 편집 2012-10-24 22:02:18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내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주필 cuadam@daejonilbo.com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과 합친다고 한다. 대선을 앞둔 시기라 그림은 될 듯하다. 무엇보다 범야권에 대항한 보수대연합 구축이라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내부적으로는 양당의 현실적인 이해가 합치된 귀결일 수 있겠다. 새누리당은 대선지형상 외연을 넓히는 일이라 마다할 리 없고, 선진당은 독자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태도 결정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 기류인 모양이다.

그럼에도, 선진당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시선은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칠 경우 형식논리상으론 합당이지만 본질은 흡수통합에 있다. 이 대목이 지역민들이 선진당을 대하는 일종의 애이불비 정서를 건드리는 지점이다. 3김씨 시절 태동한 자민련이 연원인 충청연고 정당이 자유선진당을 거쳐 선진통일당에 이르러 맥이 끊기게 된 것도 적지 않은 상실감일 터다.

선진당이 새누리당 호적에 오르기로 한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당장은 대선이 큰 장벽이었을 것이다. 자력으로 넘어설 수 없는 상황이면 '중립'을 표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정치 영역에선 성립될 수 없는 가설이다. 공당은 가치와 정책을 통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 존재이유를 증명한다. 대선은 그런 차원에서 최대의 정치 오디션이며 승패를 겨루는 경연장이다. 그러므로 정당이 이를 외면한다는 건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선진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되는 것도 이런 선거구조에 의해 강제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 선진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누구보다 이인제 대표의 고심이 깊었을 것이다. 지난 4월 총선 완패 후 나름대로 대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처럼 궁리를 거듭했지만 뭐 하나 구체화된 건 없었다. 그건 리더십의 미흡일 수 있고, 대선 정국을 순진하게 조망한 탓 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당이 존속할 수 있는 활로를 열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이 대표 몫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대선에서의 선택을 앞둔 선진당에게 새누리당과의 합당 추진은 차선책은 될 것이다. 밀어 줄 거면 깔끔하게 처리하자는 내부 압력이 적지 않았던 만큼 무슨 '플랜B'를 짜고 말고 할 계제도 아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치게 되면 어지간한 문제들은 정리된다고 봐야한다.

두 가지만 추리면 첫째는 소속 당원들의 입지 불안에 따른 '공포'를 꼽을 수 있다. 현역 의원들은 둘째 치고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은 본능적으로 집권(가능)당을 지향하는 속성이 있다. 이 때 선진당 간판으로 당선된 사실은 괘념치 않는다. 다음 선거 때의 유·불리에 민감한 부류일수록 유별나게 행동한다. 둘째로는 대선후보 지지 문제가 해결된다는 점이다. 합당과 동시에 보수진영 유력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선진당에게도 자당 후보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선진당에겐 기회비용도 따른다. 일단은 합당 효과가 박 후보 지지율을 상승시켜줘야 선진당의 어깨가 펴진다. 만약에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수가 있다. 최종적으로는 대선 투표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선진당의 현역 의원 선거구나 단체장을 배출한 지역에서 박 후보의 득표율이 저조하게 되면 불편해 질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박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는 날이면 선진당 꼬리표를 달고 있는 사람들부터 서자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집안 흥하자고 입적시켰더니 안 하느니만 못했다며 괜한 푸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선 결과와 분리한다 해도 선진당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새누리당내 주류세력으로 편입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평가절하하자면 선진당 출신은 새누리당내 여러 계파중 하나인 '선진계' 정도의 대접을 받는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제 양당 합당 문제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역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단계에 와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선진당 지도부는 'DJP공조'를 전례로 삼을 만할 것이다. 그 때의 상황과 지금은 무엇이 같고 다르며, 특히 열세에 있던 당시의 자민련이 제1 야당을 상대로 어떤 실익을 문서로 보장 받았는지 협상 프로세스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을 분점한 지역정당으로 규정돼 온 선진당이 새누리당 질서 속에 들어가면 의석을 가진 지역 기반의 정당은 종언을 고한다는 정당사적 의미도 띤다. 그럼에도 불구, 선진당은 충청권 정치수요의 '잉여'부분을 해소해주었다. 그렇게 노둣돌 기능을 해온 정당이 문패를 내리면 모두에게 좋은 일인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라병배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