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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나게하는 라디오PD의 책이야기 들어보니

2012-10-24기사 편집 2012-10-23 21: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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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세상과 책으로 감성을 논하는 작가로 유명한 정혜윤 CBS라디오PD가 23일 계룡문고를 찾아 '책, 서점 그리고 나의 삶 이야기'를 주제로 특강했다.
대학시절, 유난히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전날 본 드라마는 다음날 항상 그 친구 입에서 되돌려졌으며, 강의실 에피소드, 다른 친구의 연애사 등이 모두 소재로 올려졌다. 텔레비전으로 본 드라마 장면보다 그 친구가 묘사한 장면을 들으며 상상하는 게 좋았고, 강의실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들을 때면 내가 그 친구가 돼버린 장면을 떠올렸다.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반전은 모두 사실만으로 연결돼있다는 것이다.

정혜윤 CBS 라디오PD의 책 강의가 있다고 했을 때, 지난 봄 그의 말을 들으며 과거 친구의 모습이 떠올려졌던 건 이를테면, 자연스러웠다.

가을날 따사한 햇볕에 사르르 녹고 싶은 마음처럼 그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에 푹 빠지고 싶었다. 23일 대전 계룡문고 중고도서 판매장 노란불빛의 책빵에서 '책, 서점 그리고 나의 삶 이야기'를 주제로 특강을 한 그녀를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한 번쯤은 돌아보게 만드는 머리스타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그녀를 처음 본 사람이다. 김어준, 주진우, 공지영, 시사자키 등이 떠오른다면 조금은 아는 사람, 책을 떠올린다면 조금 많이 아는 사람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청취자와 공감하고, 감정을 담아낼 것 같은 라디오PD지만 정혜윤 PD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책 속 구절로, 그것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리듬을 담아 표현한다.

재밌다. 뭉클하다. 질투난다.

정PD의 책 특강을 들으면 처음에는 빠져들다 나중에는 질투로 끝이 나곤한다.

그녀가 신간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집어든다. 책 표지 사진을 설명한다.

"표지에 보이는 무지개는 포토샵이 아니에요. 칠레 산티아고 여행 때 찍은 사진인데, 당시 창틈으로 들어온 빛이 만들어낸 장면이죠. 이 무지개가 책이라는 생각을 해요. 간신히 열린 틈으로 들어와 빛이 되는 게 책이죠."

그녀의 삶을 바꾸는 책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엄마는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가난한 집 딸이었고, 저와 만나던 남자애의 엄마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부잣집 딸이었어요. 서로 고자질하면서 지루했던 학창시절을 보내고, 오로지 목표는 내 딸, 아들을 쟤네보다 뛰어나게 하는 것이었어요. 내가 코피를 터뜨리면 엄마가 참 좋아했고요. 신랑은 도둑처럼 온다고, 그 친구를 도둑처럼 만나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그 친구와 헤어지던 날이 생각나요. 그날은 안색이 창백하니 안좋아보였죠. 전달 제가 시험에서 1등하고 그 친구가 2등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마 집에서 안좋은 일을 당한 것 같았어요. 절 보더니 뭘 손에 쥐어주고 눈물을 훔치며 영화처럼 달아났어요. 저도 따라갔어야 했지만 손에 쥔 게 궁금해서 따라가지 않았어요. 손에 쥔게 뭐였을까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어요. 이탈리아 베로나에서만 남녀의 사랑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했던 6학년의 어느날이었던거죠."

마이크와 친하지 않은 라디오피디라더니, 마이크를 잡자마자 그냥 술술 풀어나간다. 에피소드가 끝나면 다른 에피소드가 끝없이 그녀의 입에서 조곤조곤 쏟아져나온다.

'메리포핀스'를 읽었던 8살의 기억은 하늬바람을 느끼며 책과 통했던 때였고, '톰 소여의 모험'을 읽을 때 만나게 된 소년과의 이야기는 황순원의 '소나기' 못지않은 단편소설이 됐다.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이라도 있을까.

정PD는 '자꾸 다시 읽기'가 그녀의 기억하기라 했다.

"인간은 언제 가장 지혜로워 질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읽었다고 착각한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게 아닐까요."

좋은 책은 분명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고 했다.

고개를 숙이고 텍스트를 보다가 어느 순간 '작가의 생각이 나와 같은데', '내가 말하는 게 이거야', '표현을 이렇게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순간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고 딴 생각을 하는 것, 그것이 '책 읽기'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순간 책과 내가 만나고, 술술 읽으면서 흘러가다 멈추고 생각을 덧붙이고 하는 순간 '책 읽기의 행위'가 일어나는 거라고.

그런 책과의 공감은 마치, 인상깊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처럼 오래 기억하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전한다.

그녀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과거 이동도서관 차량을 몰던 공무원과의 에피소드를 말한다.

"그 분이 말하길, 나이가 좀 있기에 친구들하고 룸살롱을 간다. 술을 먹는데 내 딸 또래의 여자가 들어온다. 깜짝 놀란다. 내가짐승도 아니고 어떻게 딸뻘 아이와 술을 먹냐, 그러다 다음에 가면 옆자리에 앉고, 다음에 가면 손을 잡고, 그러다 어깨도 안게 된다. 인간은 강한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이걸 하지 말아야지 했던 것을 조금씩 허용하면서 사는 존재다. 그러면서 저에게 그러더군요. 책을 좀 천천히 읽으세요, 대신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나에게 말해주세요. 그럼 당신에게 다음에 책을 선택해 주겠어요 라고요"

삶에서 놓친 부분을 책에서 재발견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공무원의 이야기에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고 인생의 책이됐다.

책을 읽다 '뭘 읽지?' 고민될 때는 책 읽기를 멈추라고 한다. 그러면서 읽었던 책 중에 좋은 부분을 베껴써보라 한다. 책에서 가장 와닿은 부분을 쓰고 답변을 써본다면, 자신을 돌아보게 할 거고 그렇다면 좋은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거라고.

정 PD는 책은 어렵게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샤르트르가 말한 '고매성의 협약'처럼 작가와 독자는 서로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하고, 책을 읽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으며 그 행위는 더 고매해질 수 있다.

"전 책을 읽다 많이 멈추는 편이에요. 굳이 멈추죠. 링크를 많이 시켜요. 읽었던 뉴스나 내가 사는 세상 일을 책과 연결시켜보려하죠.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됐을까 상상이 되지 않아요"

왜 책은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조르바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줄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네가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입니다."

말을 잇는다.

"당신은 책을 읽고 무엇을 하십니까? 저는 책을 읽고 알게된 대로 살고 싶습니다. 당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십시오"

강은선 기자 groove@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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