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byun806@daejonilbo.com

'과학과 미술의 만남'은 오래된 담론이다. 포괄적 함의(含意)를 담고 있다 보니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혼성예술(hibrid arts), 복합예술(multi arts) 등 진화를 거듭해 예술가와 과학자간 소통도 활기를 띠고 있다. 융복합 영역이 확장되면서 미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회학, 경제학 등과도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융·복합과 해체가 반복되면서 새로운 학문과 예술이 잉태되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존 콘스터블'은 하늘과 구름 등 기상현상을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기상학을 연구했다. 무지개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뉴턴의 광학과 빛의 굴절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고 한다. 과학에 대한 연구결과는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 화가들이 물리학과 기하학을 공부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피카소는 "내 회화는 연구와 실험이다. 결코 예술작품으로 그리지 않는다. 모든 것은 연구'라고 강조했다. 고전적인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술에 당시로선 첨단 과학인 물리학과 기하학을 접목했던 것이다.

과학과 미술의 만남은 이종교배 예술이다. 미디어 아트 중심인 것도 특징이다. 미술·과학, 모두 문외한인데 이종교배의 산물에 대해선 더 말해 무엇하랴. 싫증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추상화는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면 된다고 하지만 음향효과가 귀를 때리고 영상이 번쩍거리는 화면 앞에 서면 일순간 주눅이 들고 만다. 예외 없이 미술 울렁증이 도져 자리를 피하고만 싶다. 누구나 미술 같지않은 미술 앞에만 서면 피로감이 엄습하고 이유 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미술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면 미술관 출입을 꺼린다. 눈과 귀로 느끼는 중복의 고통을 기피하도록 뇌가 철저하게 조종을 하기 때문이다. 본능적이고 반사적이다.

유쾌하고 펀(Fun)한 예술은 언어, 문화차이, 국경도 장애가 되지 못한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것을 증명했다. 생김새로만 본다면 B급 이미지인 싸이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유쾌한 '재미'다.

순수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재미가 대세다. 이 흐름을 거역하면 존재의 가지를 잃고 만다. 미술도 재미로 토핑을 하면 인기를 끌 수 있다. 과거 대전에서 열렸던 '과학과 미술의 만남전'이 외면당한 것은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탓이다. 과학도시 대전의 정체성을 앞세우다 보니 대중에겐 난해한 볼거리가 된 것이다. '전시를 위한 전시'로 흘러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했다. 지나치게 주제에 치중한 나머지 과학과 예술이 겉도는 '따로 국밥'식 전시가 된 적도 없지 않았다. '억지춘향' 격이다 보니 개관 초기에는 호기심에 관람객이 몰리다 전시 후반에 접어들수록 썰렁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많은 예산을 들이고도 정작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낭비성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전시립미술관이 올해 기획한 '프로젝트 대전 2012: Energy(에네르기)전'은 기존 이종교배 미술과는 다르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노하우가 쌓인 탓인지 올해 과학과 미술의 만남전은 그동안 지적돼 왔던 부정적인 요소를 털어내고 그 자리에 재미를 접목했다. 관람객이 참여해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인터랙션(interaction·상호작용) 작품 중심으로 짜여 있어 '미술 트라우마' 염려는 안해도 된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8개국 22개 팀 작품 대부분 유회적인 요소가 가미돼 놀이동산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족과 함께 놀이시설 이용하듯 체험하고 참여하는 미술놀이(?)를 하면 된다. 한밭수목원에 설치된 야외 작품도 이채롭다.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돼 있어 난해한 미술과 과학의 느낌이 없다. 엄숙주의는 내숭이고 겸손이다.

프랑스 듀오 아티스트 '세노코즘'의 '아쿠스마플로르(Akousmaflore)'는 관객이 식물을 만지면 노래를 한다. 움직임이란 에너지를 소리로 전환한 작품이다. 미술이 과학을 만나 '식물들의 공연'이란 이종교배 예술을 탄생시킨 것이다. 일본의 '모토히코 오다니'의 '인페르노(inferno)'는 탄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 이미지를 보여주는 4개의 스크린 구조물로 ' 관객이 안에 들어서면 심연 속으로 빨려 드는 듯한 지옥체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대부분 작품이 놀이로 접근해 미술과 과학을 이해하는 식이다. 에네르기 전은 '펀한 미술, 펀한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마중물격인 전시이자, 매체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과학예술의 가치실현과 창조의 장인 셈이다. 그것이 바로 대전예술의 정체성이고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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