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최종편집일 : 2017-12-12 23:55

[한담청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2012-10-16기사 편집 2012-10-15 21:31:02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폴라로
  • 핀터레스트

김은주 변호사

첨부사진1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을 결심한 사람은 고요하다. 자살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질풍노도의 시간이지만, 죽음에 수반되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을 결심한 후에는 소소한 위로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에 같이 도시락을 먹던 친구 중 하나가 자살을 했다. 그 친구는 외모도 호감 가는 편이 아니었고 성격도 엉뚱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래도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는 성격 덕분에(?) 상처는 받지 않을 거라 여겼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것은 착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자살 전전날 그 친구가 반 아이들 몇 명과 실랑이로 심하게 모욕감을 느낀 일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자살 전날 점심 때 그 친구와 밥을 먹었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 난다. 평상시에는 대화 도중 불쑥 끼어 들거나 엉뚱한 멘트를 날리는 등 결코 차분하지 않은 타입이었는데 그 날 따라 이상하게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고개를 숙인 채 말 없이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깨끗이 비워내기만 했다.

나는 반찬을 흘려 그 친구에게 "혹시 화장지 있니?"라고 물었고, 그 친구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사물함 열쇠를 꺼내 건네주었다. 사물함 열쇠를 건네받아 교실 뒤편에 있는 그 친구의 사물함으로 가면서 '오늘 따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친구는 그날 오후에 조퇴를 했고, 다음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교탁에 고개를 떨어뜨리신 채 한참이나 말씀을 못 꺼내시다가 '○○가 병원에 있다, 영안실에 있다'는 소식을 간신히 토해내셨을 때 등골이 오싹해지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 때 나는 알았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라는 것을.

군인들은 자기 소속부대가 비교적 편한 편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힘들어한다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가진 것이 많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자살을 결심할 만큼 힘들 수 있다. '다 놓아버리면 되는데 왜 버리지 못하고 바보같이 죽음을 택하느냐'고 말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다 놓아버리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아 겁이 난다. 버리는 일도 죽음을 결심하는 일 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딱히 큰 고생을 하지 않고 살아온 필자도 지금까지 몇 차례 자살을 생각했었다. 학창시절 언제나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경쟁 속에서 나보다 잘난 친구에 대한 열패감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생각했었고, 사법시험에 연속으로 낙방하며 '차라리 나쁜 일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때때로 호르몬의 영향으로 극도의 우울감에 빠져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항상 결심에 이르지는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너무 아플 것 같아서'였다. 자살을 결심했다는 것은 그 육체적 고통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것인데, 그 지경에 이르고 나면 웬만한 위로나 어쭙잖은 충고가 먹힐 리가 없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든지, 우울감에 시달린다든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든지, 주변으로 멀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아진다든지 등등. 내가 생각할 때, '힘들다', '죽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하고 있는 단계라면 아직 자살을 결심한 단계는 아니다. 그 단계라면 주변 사람들의 애정으로 자살을 막을 수 있다.

'힘들다'고 말을 할 때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이라며 어쭙잖게 충고하거나 ARS 자동응답기처럼 매뉴얼에 따른 영혼 없는 말만 늘어놓을 거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우울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그런 겉도는 말에 더욱 좌절감을 느낀다.

나는 어제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인 채 10월의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소중한 생활비 아껴가며 목구멍에 밀어 넣었던 신림동의 3500원 짜리 된장 백반을 생각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어느 날은 슬프게도 들리고, 경쾌하게 들리기도 했다.

공중에 흩어지는 말들보다 된장찌개 끓는 소리에 위로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나만을 위한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슬픈 족속들이다.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더운 밥 한 끼 대접 하는 따뜻한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