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숙 배재대 정치언론학과 교수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를 합쳐놓은 합성어 폴리페서는 대학교수의 정치참여를 비난할 때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폴리페서 개념은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하여 선거철만 되면 대부분의 언론매체에서 한 번쯤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폴리페서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폴리페서는 없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폴리페서의 규모는 오히려 더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폴리페서를 비난했던 교수들까지 대거 폴리페서로 변신하였다.

교수의 정치참여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처럼 대규모로 교수집단이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드문 현상이다. 정치학 분야의 웬만한 교수치고 소소하게는 위원회 위원부터 굵직하게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에 이르기까지 지역정계나 중앙정계 참여의 유혹을 받아보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정치학뿐 아니라 행정학이나 법학, 경제학 등 선거 때마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교수들이 정치활동을 전개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국회나 청와대 입성을 통해 단순한 정책제언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직업적 정치인의 삶을 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는 폴리페서를 양산하는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사회의 엘리트층이 얇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대학진학률과 가방끈 긴 실업자 문제를 토로하지만 한국은 아직 지식인층이 그리 두텁지 못하다. 20세기 중반 해방 이후 비로소 고등교육이 확산된 한국은 아직 지식사회라고 보기 힘들다. 수백 년에 걸쳐 엘리트층을 축적해 온 서구 유럽의 모든 분야에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포진해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유럽의 경우 언론, 정계, 재계, 심지어는 노동조합과 NGO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넘친다. 이 학위들은 게다가 직장생활하면서 특수대학원에서 과외로 적당히 취득한 학위들도 아니다. 따라서 굳이 교수들이 대거 동원되지 않아도 정계 내부에서 인력충원이 가능한 것이다. 정치참여를 하는 교수들의 비율은 상당히 낮을 뿐만 아니라 이들 교수들의 역할 역시 대부분 정책제언에 제한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수에게 많은 사회적 역할이 기대된다. 교수집단은 정치적 논리와 정책개발을 위하여 동원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후보로,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등용되기도 한다. 언론에서도 교수들의 활약은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교수집단은 상대적으로 다른 집단에 비해 인재풀이 잘 갖춰져 있는 셈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상황은 민주화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영역이 민주화 이후 급속히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확대되고 새로운 정치집단이 형성되고 지방선거 도입 이후 지방정치 영역 역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정치영역의 확대와 급증하는 수요에 자체 역량만으로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디서 갑자기 그렇게 많은 정책개발자와 후보자를 데려온다는 말인가? 그래서 교수들은 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불신에 가득 찬 우리의 정치문화는 폴리페서 양산을 부추긴다. 기존 정치와 정당에 대한 깊은 불신 속에 유권자들은 항상 새로운 인물을 찾는다. 한때 그 새로운 인물은 노무현이었고, 이명박이었고 지금은 안철수다. 이들 새로운 인물들은 장기적으로 성숙된 조직을 기반으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조직이 없다. 하지만 정치와 선거는 조직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 이들은 새로운 조직을 급조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캠프는 더더욱 무주공산이다. 그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기존 정당세력 속에서 활동한 반면 안철수 후보는 독자세력을 구축하겠다며 혼자서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조직을 급조하기에 교수집단만큼 좋은 기반은 없다. 정당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책제언 등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는 집단인 셈이기도 하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교수 출신이다 보니 교수 네트워크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철수 후보는 선거 석 달 전에 출마선언을 하고 두 달 반 전에 조직을 만들더니 지금에서야 공약을 만들고 있다. 실제 안 후보 캠프에는 참모로서 각 분야별로 교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한편으로는 모두들 폴리페서를 비난하지만 다른 한편 폴리페서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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