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100년 내포시대 열다 - 충남의 상징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귀스도르프는 `기억`을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개인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억은 1인칭이거나 2인칭이다. 3인칭이 아닌 까닭은 `너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충청남도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아부지, 돌, 굴러가유~"라는 구수하고 느린 사투리로만 기억된다면 심히 경제적인 `섭휴(섭섭하군요)`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지 모른다. 어떤 이는 충남인이 가진 느림의 역습은 `이 콩깍지가 깐 콩깍지냐 안 깐 콩깍지냐`를 충남 사투리로 옮기면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한다. 바로 `깐겨 안 깐겨`다. 얼마나 빠른가.

특유의 사투리 말고도 충남을 상징하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손으로 느껴지는 이 땅의 따사로움과 냄새, 시선(視線) 등 충남 사람들이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은 많다.

사실 충남은 산과 들이 조화롭게 안배돼 있고, 지리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중간 정도다. 문물이 흥청대는 서울에 근접하지도 않고, 내륙에 일찍부터 대도시가 형성되지도 않았다. 바다와 닿아 있지만 교역을 하기 위한 거대한 상업 항구도 없다. 그렇다고 문명에 뒤떨어지거나 낙후된 벽지도 아니다. 그저 자연여건이 순조로운 만큼 문물도 알맞고, 그래서 극단적이거나 과격한 것을 꺼리고, 조화로운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백제 예술의 특징을 `온아(溫雅)`와 `조화`로 표현하는데 백제 땅에 사는 오늘의 충남인들이 그렇다.

충남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충청도 양반`보다 더 널리 퍼진 것도 없다. 양반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색안경만 벗는다면 예의 바르고, 점잖음을 말과 행실의 규범으로 삼아 온 양반의 품격이 오늘날에도 교양과 질서정신으로 무장한 충남인과 맞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충청도 양반의 화합과 중용, 은근함 속에서 찾는 조화의 멋은 서양의 `젠틀맨`이 결코 범접하지 못할 가치다. `한국 신사=충청도 양반`이라면 `충남인=대한민국 선비`라는 타이틀도 가질 법 하다.

충남 사람의 기질을 보여주는 말은 또 있다. 조선 22대 국왕인 정조가 처음으로 쓴 `청풍명월(淸風明月)`이다. 역시 조선의 선비들이 아낀 풍류 정신의 핵심 표현이자 이 땅의 양반풍 생활과 언어를 자연스럽게 풀어낸 말이다.

양반과 선비의 정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 진가를 드러낸다. 말은 느리지만 행동이 올곧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으뜸으로 사랑하는 충무공 이순신이 충남의 표상 인물인 것도 이런 이유다.

충남을 상징하는 기호(記號)는 `충청남도기(旗)`에서도 엿볼 수 있다. 충남도기는 지난 1998년 도기 조례(제2684호)에 따라 현재의 새 도기로 바뀌었다. 옛 도기는 백색과 녹색, 황색의 삼색기를 바탕으로 `ㅊ` 자를 날아 오르는 푸른 새의 모양으로 형상화한 게 인상적이다. 충남 사람의 순박함(白)과 중농정책, 산림녹화(綠), 풍요와 영광, 희망(黃)의 세상을 힘차게 날아오르라는 의미를 담았다.

현재 사용중인 도기는 충남 이미지 통합 차원에서 CI(Corporate Identity)를 그대로 썼는데 충남의 한글 초성인 `ㅊ`, `ㄴ`의 영문 이니셜 `C`, `N`을 시각화했다. 맑은 금강과 풍요로운 서해바다, 푸른 기상의 계룡산, 충남정신과 미래의 정보를 상징하는 붉은 색 원은 21세기로 뻗어나가는 충남인의 역동감을 표현했다. 현재의 도기는 내년 1월 내포(충남도청이전)신도시 출범과 함께 다시 개정된다. 아름드리 나무를 형상화한 새 CI를 담은 도기는 새 도청소재지의 얼굴이 될 예정이다.

충남도의 새는 원앙이다. 금실 좋은 부부처럼 200만 도민 모두가 백년해로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충남의 나무는 능수버들이고, 꽃은 국화다. 능수버들이 도의 나무가 된 것은 천안 삼거리의 이미지가 컸다. 재미난 건 `능수버들`에 얽힌 기막힌 에피소드다.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렇다. 전라도 고부 땅에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박현수라는 선비가 삼거리 주막에 묵는다. 밤이 깊어 잠을 청하는데 어디선가 마음을 울리는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 선비가 소리를 따라 가보니 능소라는 아리따운 처녀가 있었다. 한 눈에 반한 선비는 혼인을 약속했고, 과거에 급제해서 돌아온다. 흥이 난 능소가 가야금을 타며 읊은 노래가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하는 `흥타령`이다.

70·80년대 군사 독재 시절의 유산 쯤으로 여겨져 요즘은 잘 부르지 않지만 `충남찬가`는 충남 상징의 종합세트다.

`우리나라 계룡으로 이름난 고장`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산이 좋아, 물이 좋아, 인심이 좋아, 계절 따라 오곡백과 풍성한 옥토, 우리나라 심장부, 충절 바친 성현의 고장, 찬란한 문화, 유구한 역사 등 갖가지 키워드를 모두 담아냈다. 곡과 가사를 쓴 사람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인인 길옥윤과 반야월이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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