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유적지는 그가 태어난 산둥성 취푸(曲阜)가 가장 유명하다. 그렇다면 공자의 후손들이 저장성 취저우시에 정착하고 공자를 모시는 사당 `남종가묘(孔氏南宗家廟)`를 설립하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가문이 취푸를 떠나 취저우에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남송(南宋)의 탄생이 있다.

송나라(北宋)가 1128년 금나라에 패하자 송고종은 수도를 변경(오늘날 카이펑·開封)에서 임안(항저우·杭州)으로 옮기고 남송을 세운다.

취푸에 있던 공자의 48대 적장손인 연성공 쿵덴야우(孔端友)는 송나라 왕실을 따라 일족을 데리고 남천하기로 결정하고 고종은 이들에게 취저우의 가옥과 봉토를 하사하며 치하했다.

이후 남송이 멸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서자 원세조 쿠빌라이는 취저우에 사는 공자 53대손 쿵즈(孔洙)에게 취푸로 돌아와 제사를 올릴 것을 명했다. 하지만 쿵즈는 취저우에 이미 5대에 걸친 조상의 묘가 있어 제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고 설명한다. 대신 가문 대대로 내려왔던 연성공 작위를 포기하고 동생인 쿵지(孔治)가 이를 세습하게 해달라는 청을 올린다. 이로써 취푸에는 연성공 작위를 계승한 공자의 법통(북종), 취저우에는 적장손으로 이어지는 혈통(남종)이 각각 존재하게된다. 취저우=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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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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