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수 정치행정부장 hkslka@daejonilbo.com

추석명절 때 친지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될 것 같아?"였다. 언론사 정치부장인 만큼 남들보다는 대권에 대한 혜안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가 족집게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아요"라고 말한 뒤 "누가 될 것 같아요"라고 되물었다. 친지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이 평소 생각하는 정치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분석을 내놓았다. 한결같이 지지하는 후보를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고, 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도 명확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후보들이 대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로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등 '빅3' 대결로 압축될 전망이다. 앞으로의 변수라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여부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번 대선은 박근혜 후보와 단일화 후보의 양자 대결로 치러질 것이 확실시된다. 결국 향후 5년간 국정을 책임질 대통령은 '빅3' 중 한 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나라를 책임질 대통령감은 바로 누구다"라고 콕 집어서 얘기할 후보가 떠오르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가 대선주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친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이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노년층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 이들의 의식 속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체제에 대한 허물보다는 대한민국을 헐벗고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만큼 '대한민국의 제2도약'을 이끌 적임자라는 믿음이 강하다.

문재인 후보는 어떠한가. 정치 입문 1년만에 순회경선에서 전승을 거두며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의 정치적 능력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향수가 더 큰 역할을 했다. '소시민' 노 전 대통령이 이루려고 했던 나라에 대한 염원이 그로 하여금 유력한 대권주자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박 후보나 문 후보 모두 과거에 대한 향수가 만들어낸 대권주자들인 지도 모른다.

나올 듯 말 듯 잔뜩 뜸을 들이다가 대선 91일 전에 출마선언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어떠한가. 안 후보는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은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정치'라는 희망을 안겨줄 신선한 인물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국민들이 검증할 시간을 100일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지도자로서의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들 '빅3' 후보를 보면서 향후 5년이 걱정스럽게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안겨줄 수 있는 시대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대통합'을 내걸고 있고, 문재인 후보는 '변화'를 앞세우고 있고, 안철수 후보는 '혁신'을 시대정신으로 내걸고 있지만 국민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시대정신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요즘 한창인 미국 대선에서는 시대정신이 읽힌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내건 슬로건은 '변화(change)'였다. '변화'에는 유색인종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등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변화'는 미래에 대한 꿈이었고, 당시 미국 유권자들은 미래에 대한 선택의 개념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선출했던 것이다. 4년이 지난 이번 선거에서 오바마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전진(foward)'이다. 4년 동안의 변화를 바탕으로 미국의 미래를 위해 전진하자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분명 미래에 대한 선택이어야 한다. "이 사람을 뽑으면 앞으로 5년동안 최소한 이런 부분에서는 개선 내지 개혁이 이루어지겠구나" 하는 믿음이 국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해야만 한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 시대의 화두가 바로 경제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2월 19일이 되면 18대 대통령이 선출된다. 5년 동안 국정을 책임져야 할 주인공이 박근혜 후보가 될 지, 문재인 후보가 될 지, 안철수 후보가 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대선을 불과 70여 일 앞둔 시점에서조차 '빅3'후보들에게서 시대정신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대선후보들에게 말한다. 네거티브 선거전에 치중하지 말고,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시대정신부터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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