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호 건양대 호텔관광학부 교수

10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우리나라에서 1200개가 넘는 지역축제가 연간 개최되고 있지만 유독 10월에 축제가 많은 것은 이때가 비가 올 확률이 적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야외활동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또, 수확한 농작물을 축제 때 자연스럽게 판매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보려는 지자체의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긴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은 도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시골의 정취를 느끼며 축제장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축제가 현대인들에게 여가활동의 일부로 자리 잡은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축제가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5년 이후이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단체장들은 자기 지역을 다른 지역과 차별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을 활력화시킬 수만 있다면 다음의 선거에서 당선이 보장될 수 있었다. 그래서 단체장들은 적은 예산으로 짧은 기간 동안 자신의 치적을 확실하게 알릴 수 있는 축제를 경쟁적으로 개발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부작용도 많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개최되는 축제가 선심성 행사로 전락하기도 하였고, 지역주민들의 편익보다 관의 의도만을 홍보하는 전시행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축제를 통해 연예인들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축제가 지역과 지역주민을 변화시켜, 결과적으로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성공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비판과 시행착오가 성공의 반면교사가 된 것이다.

지난 1월 강원도 화천군에서 23일간 열린 산천어축제에는 114만 명의 관광객이 축제장을 찾았고, 축제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파급효과만 해도 995억 원에 달했다고 화천군은 발표했다. 이곳은 군부대가 많은 전형적인 군사도시로 기간산업이 전무하다시피 한 산골마을이었다. 얼어붙은 지역경제를 살려보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산천어축제는 맑은 물, 깨끗한 환경을 기반으로 겨울관광의 메카로 화천을 탈바꿈시켰다. 겨울인데도 지역의 농산물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숙박시설은 축제가 개최되기 몇 달 전에 예약이 완료되었고, 음식점에서 줄 서 기다리는 것은 흔한 광경이 되었다.

올해는 산천어축제 기간에만 1만 명이 넘는 동남아 관광객이 이곳을 다녀갔다. 화천읍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화천을 찾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1일, 미국 CNN은 화천 산천어축제를 '겨울철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보도할 정도였다. 이제 화천은 산천어축제를 말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우리 지역에도 이러한 성공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충남 보령의 머드축제는 보령과 보령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지난 1998년, 대천해수욕장 인근 갯벌에서 채취되는 양질의 머드를 화장품으로 개발하여 이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령 머드축제는 개최되기 시작했다.

한때 한국 대표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던 머드축제는 이제는 명예축제로 추대되어 올해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유치하였다. 특히, 이번 축제에 외국인 관광객만 해도 24만 명이 넘었다고 보령시는 밝혔다. 보령 머드축제는 지구촌의 '뉴스 메이커'로도 각광을 받았다. 올해 축제 기간 동안 미국 CNN을 비롯한 AP, WSJ과 영국의 REUTER, 프랑스 AFP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에서 머드축제를 연이어 소개했다. 머드축제가 새로운 한류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충남 청양군 칠갑산 기슭의 천장리 알프스마을에서 개최되고 있는 '칠갑산얼음분수축제'도 작지만 성공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축제다. 일상에서 늘 보던 얼음조각으로 움직이지 않는 도시인의 마음을 녹여냈다. 흔하지만 획일적이지 않은 '시골다움'으로 포장된 축제가 박제화된 관광상품의 굴레에서 벗어난 변화의 결과였다. 이 같은 작은 변화를 시발로 천장리 마을은 겨울에는 '칠갑산얼음분수축제', 여름에는 '세계조롱박축제'를 개최하여 전국 제일의 마을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해외여행객 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에 가도 그곳만의 독특한 매력을 찾기 어렵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농촌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정책과 이로 인해 수반되는 문화의 획일화 현상을 지역 축제가 앞장서 변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화천 산천어축제와 보령 머드축제처럼 '가장 재미있는 축제가 가장 관광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듯이 연륜만이 훈장인 축제는 근본체질까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축제만이 지역과 지역민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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