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수 기자 hkslka@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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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는 열차표를 구하기 위해 역장과 철도 직원들에게 '줄'을 대던 시절이 있었다. 기차가 턱없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벌어졌던 진풍경이다.

대전역 주변은 표를 구하기 위한 귀성객으로 장사진을 이뤘고, 역전 파출소에는 암표상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고향 가려고 표를 산 게 무슨 죄요?", "거짓말하면 위증까지 올릴 거요!"라는 고성이 파출소 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불과 10여 년 전 일이다. 이리 힘들게 '왜 가냐고' 물으면, 그냥 배시시 웃던 시절이다. 사람들이 사는 모든 이유, 이야기가 그 웃음 속에 녹아 있음을 묻는 이도 답하는 이도 알던 때다. 그야말로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추석 귀성의 이유는 간단치 않다. 동물의 귀소본능이라는 거창한 설명도 결코 정답이 아니다.

옛 대전일보의 추석 관련 기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갖가지 귀성 이유가 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와 친지를 찾아 뵙는 게 우선이지만 혼사나 취업, 전직, 이사 등을 위한 정보교환과 동창 모임, 미래설계까지 다양하다. 처녀 총각은 신랑감, 신부감에 대한 기대로 설레었고, 도시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고향 친구들과 다른 좋은 직장에 대한 이야기 꽃을 기대하는 눈치가 빤했다. 어떤 이는 자녀들에게 시골을 알려주려는 귀성이고, 어떤 이에게는 지친 도시생활을 접고 낙향하는 발걸음이었다.

꽉 막힌 귀성길의 고생 쯤은 별일이 아니었다. 버스를 타건 기차를 타건, 혹은 비행기나 배에 몸을 싣든, 멋진 자가용을 끌고 내려가든 고생은 매한가지였으니까.

요즘 추석 풍경은 어떨까? 명쾌한 진단은 대전역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말 한마디였다. "요새 한복 입고 고향 가는 사람 찾기 힘들어요."

그러고 보니 추석에 한복 입는 이가 드물어졌다. 예전엔 버스정류장과 기차역에 한복을 차려 입고 선물 꾸러미를 든 귀성객은 흔했다. 엄마 곁의 고사리 손들도 색동옷 천지였다.

세월 따라 사라진 건 한복 뿐만이 아니다. 온 가족이 모처럼 모여 웃음꽃을 피우던 떠들썩한 한가위 분위기도 행방불명이다.

시골 부모가 도시의 자녀를 찾는 역(逆)귀성이 만연해 지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친지를 찾거나 동네 어른들께인사하던 미풍양속도 뜸해졌다. 한 때의 보통구였던 '추석,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것을 마냥 사람 탓만 할 수는 없다. 조상님이 알면 혀를 찰 일이지만 시대가 그렇게 바뀌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좌포우혜(左脯右醯) 등이 엄격했던 차례상의 격식도 파괴된 지 오래다. 잘 먹지 않는 탕과 산적, 어전 대신 아이들이 즐겨 먹는 갈비찜이나 잡채, 치킨을 올리는 가정도 부쩍 늘었다. 3-4일 동안 휴양지를 찾아 즐기고, 아예 휴가지에서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다.

이쯤 되면 변화라기 보다 격식파괴, 전통 파괴, 명절파괴 3단 콤보다. 조상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인식 변화가 속세의 흐름을 그렇게 틀고 있다.

풍속은 달라졌지만 추석은 여전히 한국인에게 뗄 수 없는 키워드다. 요새 뜨는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로 치면, 추석은 '달이 차오른다, 가자'로 출발해서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라며 뜨거운 정(情)을 나누고, '나는 별일 없이 산다'며 부모 형제에게 고하는 해피엔딩이 틀림없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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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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