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극장가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다. 매년 명절마다 그렇듯 꽉 막힌 고속도로가 퍼뜩 머리에 떠오른다. 올 추석은 연휴마저 짧아 교통정체가 극심할 듯하다. 이러다 보니 연휴 끝자락을 드라이브로 마무리 하는 것은 부담이고 그냥 쉬자니 뭔가 아쉽다. 이럴 때 극장만한 곳이 없다. 때맞춰 가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돼 온가족이 나들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간첩 (우민호 감독)

올 추석 극장가의 화두는 단연 `광해, 왕이 된 남자`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폭군이미지에 갇혀 있던 광해군을 새롭게 그린 이 영화는 350만명 관객 동원에 성공하며 롱런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비해 영화 `간첩`은 그리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수훈련을 받아 살벌한 줄만 알았던 간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추석대목에.

아이러니한 설정이 눈길을 끌면서도 무언가 뻔 할 것만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간첩은 결코 찌질하지 않다. 오히려 깔끔한 쪽에 가깝다.

남파 22년차 간첩 김과장(김명민 분)은 불법 비아그라를 판매하며 근근이 살림을 이어나간다. 김과장이 남과 북에 있는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중 10년 만에 암살지령이 떨어지고 이를 위해 북한 최고의 암살자 최부장(유해진 분)이 급파된다.

이때부터 생활고에 파묻혀 지내던 남파간첩들이 암살조에 속속 합류한다. 억척스러운 부동산 아줌마로 살아가던 강대리(염정아 분)가 알고 보니 로케이션 전문 간첩이었고 소를 자식처럼 돌보며 FTA 반대 집회를 주도하는 우대리(정겨운 분)는 해킹전문 간첩이었다는 설정까지는 다소 뻔 한 구조.

뻔 한 설정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은 김명민, 유해진, 변희봉, 염정아로 이어지는 배우들의 호연이다. 특히 조선명탐정에서의 어색함을 내려놓은 김명민과 타짜에서의 웃음기를 쫙 뺀 유해진은 본좌급 연기를 선보이며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비해 영화의 뒷맛은 다소 밍밍하다. 이렇다 할 임팩트가 부족하다보니 영화를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럼에도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사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 영화는 의외의 모습을 선사한다. 쉬리보다는 가볍고, 간첩 리철진보다는 묵직한 맛이 있다. 이 영화를 굳이 가족영화의 범주에 집어넣는다면 `간첩질보다는 더 힘든 게 가장의 역할`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5세 이상 관람가.

테이큰2 (올리비에 메가턴 감독)

영화 `테이큰`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중년 액션배우로 자리매김한 리암 니슨이 속편으로 돌아왔다. `테이큰 스타일`에 환호했던 관객들도 추석연휴 직전 개봉한 `테이큰2`에 예매율 1위로 화답했다. 테이큰2는 전작에서 보여준 애절함과 긴장감 대신, 화려함이 한층 강화됐다.

특히 전작에서 `I`ll kill you`라는 단 한마디의 대사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던 리암 니슨의 중후한 목소리는 여전히 그대로다.

이야기는 전작에서 납치사건을 일으켰다가 리암 니슨에게 오히려 뒤쫓기는 신세가 됐던 인신매매범 일당이 복수를 꿈꾸면서 시작된다. 전작에서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인신매매범들은 특수요원 출신 브라이언(리암 니슨 분)의 뒤를 쫓고 결국 이스탄불로 여행을 온 브라이언의 전처 레노어(팜케 얀슨 분)을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전작에서 너무 많은 살생을 한 탓에 이제 여생을 조용히 살려고 마음먹었던 브라이언은 또다시 아내 구출작전에 뛰어든다.

날아다니는 것은 총알이요, 쓰러지는 것은 온통 악당들이다. 권선징악이라는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에 충실한 이야기 구조 덕분에 `내가 저상황이라면 어쩌지`하는 고민 따위도 필요 없다. 그냥 눈뜨고 리암 니슨의 액션만 지켜보면 된다.

특히 전작에서의 빠른 템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스케일은 확실히 커진 느낌이다. 영화 `택시`에서 짜릿한 추격전을 선보였던 뤽 베송이 제작을 맡은 만큼 차량 추격전은 가히 압권이다.

여기에 브라이언이 납치범에게서 탈출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기발함이나 압도적인 액션신은 전작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모습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역시 전작만한 속편이 없다는 영화계 속설을 뒤집기에는 다소 힘에 부쳐 보인다. 전체적으로 전작보다 재미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전작의 흥행포인트가 가려진 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에 있었지만 속편에서는 적이 누군 줄 이미 알고 있으니 흡입력이 그만큼 떨어진다.

여기에 블록버스터식 화려함을 강조하려다보니 선과 악의 밸런스 유지에 실패한 모습이다. 가족의 무덤 앞에서 복수를 다짐하던 인신매매범 일당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다. 또 60대에 접어든 리암 니슨의 체력을 고려해서인지 전작보다 액션은 줄고 총격신 비중이 커진 점도 싱거운 대목.

그럼에도 90분을 투자할 만한 영화라는 점에서는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 테이큰식 액션에 매료됐던 관객들은 전작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 추석 연휴에 피 끓는 가족애에 노익장을 불태우는 리암 니슨을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김대영 기자 ryuchoha@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