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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우리 부부, 대화 필요한 때

2012-09-27기사 편집 2012-09-26 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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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 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한 입원실에서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왔어요? 40대의 그 남자는 바람을 피우다가 마누라한테 딱 걸려 맞아서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처음 질문했던 50대 그 남자는 마누라한테 밥 달라고 했다가 맞아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60대 남자, 자긴 나가는 마누라 보고 어디 가냐고 물었다가 맞아서 왔다고 했고, 또 다른 70대 남자는 거실에서 마누라랑 눈 마주쳤다고 맞아서 왔다고 했다. 건너편 누워 계시던 80대 할아버지, "난 아침에 눈 떴다고 맞아서 왔어~"라고 했단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 벌다가 기운 없어지고 할 일이 없어지니 저렇게 설움을 당한다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아줌마들 '오죽했으면' 저런 얘기 만들어서 좋아들 하실까 싶기도 하다.

최근 이혼율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황혼 이혼'이라 부르는 50대 이상의 이혼은 2005년 이후 꾸준히 늘다가 지난해 1만 건을 넘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아내 측 요구에 의한 것이고, 이혼 사유의 66%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참고 또 참고 있다 아이들 시집장가 보내자마자, 머릿속으로 수천만 번은 더 시연해 보았던 이혼 서류 던지고 해방하기를 감행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그 시기에 30-40대 시절을 보낸 우리 70-80대 할아버지들은 가정을 돌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자랐던 50-60대 아저씨들 역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내 가정을 지켜줄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집이라는 장소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편안한 곳이길 바라면서, '집구석'에서 묵묵히 자신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게 아내의 당연한 의무라 치부해 버렸던 것은 아닐까. 여기다가 조상 대대로 천 년 가까이 내려온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풍토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경상도 남자랑 15년을 살면서 어느 정도 '고수'가 되었다 자부했건만, 얼마 전 남편이랑 또 다퉜다. 사건은 그랬다. 북대문의 옛날 이름이 어딘 숙청문으로, 어딘 숙정문으로 되어 있는데 시험에 나오면 어떻게 써야 하냐는 아이의 질문에, 울 남편 "북대문은 없어." 대개의 경우 고수인 나는 모른 척했을 텐데, 황당해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교과서에 있대잖아~." 울 남편 아이 앞에서 무안했는지 자기의 권위에 도전을 받았다 생각했는지, "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어쩌고 저쩌고…." 가만히 놔뒀다간 논문 한 편 나올 기세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말소리가 빨라진다. "알았어. 됐어. 북대문 없어" 하고 끝을 낸다.

어이가 없다. 교과서에 있다는데…. 그 와중에 우리 아인 언제 빠지고 없더니, 그새 담임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나 보다. 기특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둘 다 맞는 말인데,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는 명료한 답을 얻고 한심하다는 듯 우릴 보며 한마디 툭 던진다. "그래, 아빠가 이겼어?"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 너무 바빠 돌아볼 겨를 없었던 우리 부부의 대화라는 게 늘 이런 식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정치판도, 직장도, 가정도 "대화가 필요한 때"라고 이야기하지만, 평소에 익숙지 않은 대화는 결국 '싸움'으로 끝이 난다.

어느 심리상담가는 성공적인 대화를 하려면 "너는~"보다 "나는~"으로 얘기하고, 상대방은 "그랬구나~"라는 말로 시작하라고 했다. 또 어느 교수님은 배우자에게 '감탄해주라'고 하면서 '감탄'은 원숭이를 사람으로도 진화시킨다고 했다. 말보다는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 더 낫다는 말도 있다. 이도 저도 새삼스럽고 멋쩍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긴 하지만, 분명 노력이 필요한 일이고,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한 소통 전문가는 '배려와 존중이 깃든 목소리가 소통의 비법'이라고 했다. 가시를 빼고, 뒤틀림과 비꼼을 풀고 말을 건넸다. "나 오늘 너무 힘들어. 며칠째 못 자고 연강했더니 다리가 후들거려." 평소 같았음 "난 오늘 환자 80명 봤어. 내가 더 죽겠어" 했을 남편이 단지 목소리에 힘만 뺐을 뿐인데 "그래? 데리러 갈까?" 한다. 그래, 내 남편밖에 없다. 내가 잘해야지. 잠시 후 각자 엇갈린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 짜증이 나서, 서로 못 알아들은 거라고 또 싸우고 있다. 분위기 파악한 우리 아이, "그래 이번엔 누가 이겼어?" 한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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